(8)신기원 연 80년대 한국스포츠|신들린 듯 폭발한 「메달사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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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여름 때묻은 보자기에 달걀꾸러미를 싸들고 선수촌을 찾았던 시골할머니, 무공해식품이라며 선수들 건강을 걱정해 주던 충남 4H클럽 회원들, 한국 최초의 서양 배라며 단맛을 선사해준 경기도의 농장주인, 중고차 한 대를 팔 때마다 1천원씩 떼어 모은 5천만원을 기탁하며 주먹을 불끈 쥔 서울중고차매매협회회원 등 민초(민초)들의 지극한 격려와 대기업 총수들의 뒷바라지가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스포츠를 세계 4강 안에 진입시키는 기적을 엮어냈다.
당시 한국대표팀 김집(김집) 단장은 서울올림픽 금메달 목표를 LA와 같은 6개로 공식 발표했으나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김단장은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금메달 목표」란 비망록 속에 11개+α로 적어놓고 있었다. 한국팀의 메달사냥은 대회 5일째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급 김영남(김영남)이 소련을 누르고 첫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부터 신들린 듯 폭발했다.
또 유도에서 65kg급의 이경근(이경근)과 호프 김재엽이 잇따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복싱에서도 플라이급 김광선(김광선)과 라이트미들급 박시헌(박시헌)이 금메달을 따내는 등 격투기에서만 당초 목표인 6개의 금메달을 캐내 기적이 일어날 조짐을 보였다.
대회 14일째인 9월 30일. 이날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실이 마냥 뿌듯한 날이기도 하다.
l7세의 신데렐라 김수녕(김수녕)을 필두로 한 여고생 트리오 왕희경(왕희경) 윤영숙(윤영숙) 등이 개인 금·은·동메달과 단체 금메달을 모두 휩쓴 것이다.
서울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단체종목인 여자핸드볼의 개가.
단신의 가냘픈 한국낭자군이 남자같이 억센 소련을 21-19로 누르고 우승, 한국스포츠가 올림픽출전 40년만의 단체종목 첫 우승이라는 감격을 엮어냈다.
그밖에 여자하키와 남자핸드볼의 빛나는 위업(은메달)과 여자탁구 복식에서 환상의 콤비인 양영자(양영자)-현정화(현정화) 조가 세계최강 중국의 천징-자오즈민 조를 2-1로 침몰시킨 일 등은 세계스포츠계를 놀라게 한 일대사건이었다.
이렇듯 한국스포츠는 서울마당에서 금12·은10·동메달 11개를 일궈내 1위 소련(금55· 은31·동46), 2위 동독(금37·은35·동30), 3위 미국(금36·은31·동27)에 이어 일약 세계 4위를 차지하는 기적을 창출해냈다. 4년 전 자유진영만 참가한 LA대회에서 금메달 6개로 10위를 차지했던 한국으로서는 실로 놀라운 성과였다.
그러나 한국이 일궈낸 12개의 금메달 중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도 1∼2개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의 쾌거를 시샘한 세계스포츠계가 텃세판정이라고 비난하는 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복싱에서 밴텀급 유망주인 변정일(변정일)이 1회전에서 어이없는 편파 판정으로 탈락한데 격분, 링 위에서 소동을 벌인 사건은 상황을 고약하게 중계한 미국 NBC방송으로 인해 국내여론이 한때 반미·친소 경향으로 반전되는 소용돌이를 겪기도 했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전말은 국제스포츠계의 치부를 드러내놓는 것이다. 국제복싱계의 마피아 대부 마냥 군림하고 있는 안와르 초드리회장(파키스탄)은 대회가 시작되자 김승연 (김승연) 복싱연맹회장에게 금메달에 대한 상당한 대가를 요구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회장이 이를 정중히 거절하자 한국 복싱은 심판위원회 마피아들의 음모와 농간에 휘말렸다.
이같은 배경 하에 오광수에 이어 변정일 마저 「억울한 판정패」로 탈락되자 한국임원들은 이성을 잃게된 것이다.
뒤늦게 한국측을 동정한 심판들은 미들급 결승에 진출한 박시헌에게 동정표를 던져 우세한 경기를 벌이던 존스(미국)를 희생시켰고 이에 미국측이 한국의 로비설 등을 퍼뜨리며 강력히 반발, 결국 한국 복싱만 망신을 당한 셈이 됐다.
유도 60kg급 김재엽(김재엽)의 경우에도 한국의 입김이 작용, 강적인 일본 호소가와를 준결승에서 탈락시킴으로써 손쉽게 금메달을 딸 수 있게 했다는 일부 외국관계자들의 비판이 있었다. <권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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