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친위대' 고백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 "노벨상 자격없다" 여론 뭇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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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독일의 귄터 그라스(78.사진)가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다음달 출간할 청소년기 회고록 '양파 껍질'에 관한 인터뷰를 하던 지난 주말 "10대에 나치 친위대(SS)에 복무했다"고 밝히면서다.

그라스는 그동안 독일 최고의 작가이자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특히 좌파 평화주의자로서 나치 범죄 고발에 앞장서 왔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나치 장교 복무 경력을 앞장서 비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 인물이 악명 높은 나치 친위대에 복무했다는 사실을 60년 넘게 숨겨왔다는 점에서 비난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우파 신문과 정치인들은 연일 그라스를 두들기고 있다. 빌트 차이퉁은 "친위대 병사였다는 사실이 미리 알려졌다면 결코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지인 한델스 블라트는 "그의 나치 친위대 전력 고백이 새 책 발매에 맞춰 절묘하게 이뤄졌다"며 마케팅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독일 언론재벌인 악셀슈프링어의 클라우스 라라스 전 부회장은 "그라스의 뒤늦은 고백은 그의 책을 더 많이 팔리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파 정당인 기민당의 볼프강 뵈른젠 의원은 "그라스는 그동안 정치인에게 요구해왔던 높은 도덕적 기준을 이제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독일 유대인중앙협의회는 "친위대 복무 경력을 오랫동안 숨겼다는 사실은 그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을 가소롭게 만든다"고 논평했다.

동료 문인과 지식인들은 엇갈린 반응이다. 마틴 발저는 "스스로 고백한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며 "누구든 죄없는 이가 먼저 돌을 던져라"며 그라스를 두둔했다. 그러나 에리히 뢰스트는 "왜 그동안 침묵했는지 그의 대답을 듣고 싶다"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치 침략을 받았던 동유럽 국가들의 반응은 특히 신랄하다. 그라스의 대표작인 '양철북'의 무대인 폴란드 그단스크의 자유노조위원장 출신인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은 "그에게 주었던 그단스크 명예시민증을 스스로 반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몰아붙였다. 국제 펜클럽 체코 본부는 13일 "그에게 수여한 카렐 차페크 문학상을 철회하는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그라스는 이러한 비난 공세에 "일부 인사들이 나를 파렴치한으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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