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환율 희망 섞인 예측 난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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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임금·금리보다 더 무서운 환율-.
최근 경기논쟁과 관련, 「예고가 있을 수 없는 경제변수」인 환율을 놓고 갖가지 주장과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내년도 경영계획을 싸야하는 기업들마다 환율전망을 고쳐 잡느라 새로운 정보들을 이리저리 분석하고 있고 최근에는 「정부가 환율을 한번에 4∼5% 절하할 것」이라는 희망 반·관측반의 루머까지 돌고있다.
막상 정부는 구체적인 환율 운용방침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에서 최근 원화의 대미 달러 환율은 말없이 하루에 10∼30전씩, 크게는 하루에 70전도 절하되고 있으며 바다건너 국제외환 시장에서는 그 같은 원화 환율의 변동에는 아랑곳없이 우리에겐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달러강세, 엔화약세가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정책변수 중 환율이 내년 경제상황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최근 대한상의가 2백개 기업들에 내년도 수출환경상의 애로요인, 가장 효과적인 경기 부양책을 물은 결과 양쪽 다 환율이 임금·금리·무역마찰·세제들을 제치고 첫째로 꼽혔으며 기업들의 그 같은 생각에는 정부도 수긍하고있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 초에 시장평균환율제를 도입해 환율결정을 부분적으로 시장기능에 맡긴다는 이야기만 하고있을 뿐 구체적인 절상이나 절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이 「안정적인 운용」만을 강조하고있다.
문제는 우리 경제상황의 현재와 장래에 가장 합당한 환율수준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내년 한해의 경영전략을 짜기 위해 전제하고 있는 90년의 대미 달러 환율은 삼성 6백72원(연평균)·현대 6백70∼6백80원(연평균)·대우6백80원(연말)·쌍룡 6백85원 또는 6백66원(연말)·기아산업 6백60원(연평균) 등이다.
이 같은 수치들은 「전망」이라기 보다는 일단 안전하게 장사를 하려는 기업들의 「보수적인 전제」들인데 현재의 환율이 달러 당 6백73원 수준이고 보면 일단 기업들은 대부분 내년 중에 추가적인 절상을 예상하고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소폭의 절하」를 예상하는 쪽에 가까운 것인데 시티은행은 가장 최근의 전망에서 내년 말 환율을 달러 당 7백원, 최소한6백85원으로 보고있어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최근 「원화의 일시 평가절하」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그 같은 「절하예상」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찔끔 찔끔 하루씩 오르락내리락하며 환율이 절하 추세를 탄다면 수출이 미뤄지고 수입이 앞당겨지는 현상이 의당 일어날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의 무역규모로 보아 연간 경상수지 10억달러 정도는 간단히 왔다갔다할 수가 있다.
또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주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절하할 환율이라면 차라리 일시에 단행해버리는 것이 나으며 마침 내년 초면 시장 평균환율제로 환율 결정방식이 바뀌니 만큼 시기적으로도 제도개편직전 평가절하를 단행하기가 맞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시 평가절하는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당장 닥칠 물가상승의 파고를 각오해야하고 또 미국과의 마찰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의 고통을 순간적으로 덜어주는 「환율주사」가 구조조정이나 기술개발의 주체인 기업들을 그만 쉽게 가버리도록 만들 수 있다는 부작용이 두렵기도 하다.
86∼87년 일본과 대만이 우리보다 앞서 가파른 절상 길을 숨가쁘게 오르고 있을 때 우리는 앉아서 얻는 가격경쟁력을 마치 우리의 진짜 실력인양 즐기고만 있다가 뒤늦게 그네들을 따라 가려니 금방 밑천을 드러내고 주저 앉아버리는 당장의 현실이 그 같은 우려를 얼마든지 뒷받침한다.
소폭의 절하추세 속에 환율 운용에 대한 주장과 전망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환율과 같은 「최후의 거시변수」를 작동시켜 보았자 정치·사회 등 경제주변상황이 계속들 끓고 노·사·소비자 등 경제 주체들이 새로운 질서를 찾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는 사실이다.
경제가 버텨줘야만 다른 분야의 발전도 가능한 것인데 다들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경제가 언제까지나 환율과 금리 등으로「뒷돈」을 댈 수는 없는 것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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