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국산헬기 생산 "공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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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재계의 공중전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삼성·대우·대한항공·삼미에 이어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정공이 8일 국내 최초로 민수용 중형헬기 BK117기(8∼11인승)의 시제품 출고 기념행사를 갖고 본격적으로 항공산업에 뛰어 들었다.
현대그룹은 이날 『연간 20대의 민수용 헬기를 조립·생산하고 앞으로 기술을 축적, 항공산업을 90년대 현대그룹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대는 작년 10월 정부로부터 헬기생산 사업허가를 받은바 있어 항공산업 참여가 예고돼 있었으나 기존회사보다도 빨리 헬기의 국내판매에 들어감으로써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가와사키 중공업과 서독 MBB사가 공동개발한 BK117기는 각국에 2백30여대가 보급돼 있는데 현대는 지난 9월 아시아지역 판매권자 인가와 사키 중공업과 계약을 체결, 3개월만에 부품을 들여와 조립생산에 들어간 것.
현대 측은 향후 4년 간 9백억 원을 투자해 91년부터 동체 및 부품일부를 국산화, 93년 이후 완제품을 해외에 수출할 계획. 2000년대에는 전투기와 항공기 생산까지 연결 지을 수 있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BK117기는 쌍발엔진에 주야간 운행·사진촬영이 가능하며 최대속도는 2백78km(시간당), 체공시간은 2.7시간이다. 대당 판매가격은 14억∼17억 원.
항공산업분야에서는 후발주자인 현대가 헬기의 내수전망이 결코 밝지 않은데도 국내판매에 처음으로 도전한 것은 선발주자를 따라 잡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항공산업은 87년에 세계 시장 규모가 1천7백억 달러에 달했으며 국내 생산 규모도 88년 1천5백64억 원에서 94년에는 1조3천억 원, 2000년에는 3조5천2백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항공산업은 대한항공이 72년 육군의 소형 헬기 사업계획에 따라 착수, 미 휴즈사의 369모델을 들여와 76년부터 500MD를 생산한 것이 시초.
대한항공은 이후 11년 간 7백대의 헬기를 생산, 국내 기술 축적에 기여했으나 미국에 수출한 헬기의 일부가 북한으로 들어가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어 삼성항공(당시는 삼성정밀)·대우 중공업이 차례로 참여했는데 FX사업(차세대전투기사업)에서 삼성이 86년11월 주계약자로 선정됨으로써 일단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고 있다.
또 삼미그룹이 지난 10월 이탈리아 아구스타 항공과 합작, 삼미 아구스타 항공을 설립하고 경비행기 생산공장(연간 36대)을 전북 고창에 건설중이다.
현재 재계의 관심이 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HX(차세대 헬기구매) 사업.
삼성은 미 벨사와 합작, 벨412SP의 조립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대우는 미 시코스키사와 합작으로 86년 대우 시코스키 항공을 설립하고 H76 이글의 시험 조립생산을 마친바 있다.
정부는 기종 선정을 둘러싼 삼성·대우의 로비전이 치열한 가운데 양 기종의 시험운항을 하고 있다.
헬기사업은 정부의 HX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어느 회사든 안정된 판매물량을 확보하기 때문에 순탄한 출발을 할 수 있지만 민수용 헬기판매는 시장성이 없어 모험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현대는 앞으로 부정기 운항사업과 응급환자 수송·사진촬영 등으로 최소한의 소요는 확보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시장전망은 불확실한 상태다. 업계는 헬기의 민간수요를 연간 10대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 국내 운항중인 민간헬기는 모두 68대에 불과하다.
또 현행 항공기 운항 규제법이 너무 까다롭게 돼있어 헬기를 운항하려면 일주일 전에 신고해야 하는 점도 장애 요인이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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