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면 커지는 '權비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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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2000년 2월 3천만달러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추가로 건넸다고 진술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權씨에게 건네졌다는 현대 비자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같은 해 3월 鄭회장이 현대상선에서 조성한 비자금 2백억원을 權씨에게 전달한 것을 더하면 5백억원이 넘는 것이다.

검찰은 鄭회장뿐 아니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추가로 드러난 3천만달러는 현대 계열사가 해외에서 조성해 權씨 측이 알려준 해외계좌로 입금시키는 방식으로 전달됐다는 것이다. 자금 조성부터 전달까지의 모든 과정이 우리 수사당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해외에서 이뤄졌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현대 측은 權씨에게 국내에서 현금 2백억원을 줄 때도 종이상자에 2억원 또는 3억원씩 담아 차에 싣고 가 김영완씨를 도로에서 '접선'해 전달하는 등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방식을 동원했었다.

14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는 당시 현대상선의 돈 2백억원을 가져갔다는 현대계열사 임원 전모씨와, 김영완씨의 지시로 돈을 싣고 왔다는 金씨 운전기사 2명이 "서로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함에 따라 두 돈이 서로 다른 것일 가능성(본지 9월 20일자 6면) 이 부각됐다.

만약 두 돈이 서로 다른 것으로 확인되면 현대 비자금의 규모는 더욱 불어나게 된다.

검찰은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해외에서 이뤄진 비자금 전달 경위나 용처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법정에서 현대 임원들에 대한 증인 신문 등을 통해 현대 측이 權씨에게 2백억원을 전달한 과정은 상세히 밝혀졌다.

현대상선 직원들은 2000년 3월 김충식 전 사장의 지시로 2백억원 상당의 용선료와 화물선적비 등의 지출이 발생한 것처럼 가짜 전표를 작성한 후 거래처에 송금한 것처럼 꾸민 뒤 돈을 빼내는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이 돈을 수도권 은행지점들을 다니며 현금으로 바꾼 뒤 현대상선 지하창고에 가져와 사과상자 같은 박스에 담아 쌓아 두었다 일정량이 되면 金전사장의 다이너스티 승용차에 15~18개씩 싣고 날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權씨 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權씨 변호인들은 현대 임원들에게 "현금 2백억원을 조성한 것 이외에 3천만달러의 비자금을 만든 적이 있느냐"고 물어 "그런 사실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또 이날 법정에선 증인 신문과 관련해 검찰 측이 "변호인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유도 신문을 한다"고 항의하자 변호인 측은 "검찰이 왜 질문을 끊느냐"고 맞서는 등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강주안.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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