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브로드웨이 두드린 '난타'배우 서추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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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힘은 들지만 신나요. 꿈에도 그리던 브로드웨이 무대잖아요."

도마.칼.프라이팬.물통 등 부엌에서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타악기로 변한다. 만 6년 동안이나 이 짓을 했으니 이젠 도가 통할 만도 하다. 농익은 손놀림으로 그 높은 뉴욕 브로드웨이의 문을 두드린 연극 '난타'의 홍일점 배우 서추자(30)씨. 그는 이번 공연이 평생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맨해튼 42번가 뉴빅토리극장의 2003~2004 시즌 오픈 공연의 영광을 안은 난타(미국 공연명 COOKIN).

난타를 이끌고 있는 다섯명의 배우 중 유일한 여성인 徐씨는 1997년 10월 난타의 탄생과 함께 지금까지 매일 '마구 두들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남자 배우들은 변동이 많았지만 그는 홀로 남아 7년째 난타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2001년 9월 초 미국 내 50개 도시 순회공연을 시작했다가 '9.11테러'로 인해 바로 철수한 한(恨)을 이번 공연을 통해 풀고 있어요."

그에겐 더 진지한 한도 있다. 열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린 동생들과 함께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어쩌면 그의 날렵하고도 힘찬 몸짓은 그때의 외로움을 날려버리려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徐씨는 다이어트를 하거나 살찔 걱정을 하지 않는다. 공연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와 운동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90분짜리 공연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몸은 땀범벅이 되죠."

운동 같은 공연으로 다져진 몸이라 보기만 해도 고무 같은 탄력이 느껴진다. 그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동일한 연기만 하면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에 솔직히 지겹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음식도 오래 먹으면 싫증나잖아요. 그래도 우리 팀의 꿈을 이룰 때까진 군말없이 할래요."

그의 꿈이자 난타 제작사인 PMC 송승환 대표의 꿈은 오프 브로드웨이에 상설 극장을 하나 갖고 장기 공연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번 공연은 4주짜리(오는 19일까지) 맛보기다.

난타팀에 합류하기 전 약 3년간 대학로 연극무대에 섰던 그는 "그 꿈이 이뤄지면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은 햄릿의 '오필리어'란다. 이를 위해 정식으로 연기공부를 할 필요를 느껴 올해 뒤늦게 서울예술대에 입학했다.

지난달 25일 브로드웨이에서 첫 막을 올릴 때만 해도 난타팀은 좀 겁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열띤 반응을 보면서 장기 공연도 한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고 있다. 뉴욕 타임스도 지난 1일 공연리뷰를 통해 "에너지가 넘치고 재미가 가득하다"고 평했다.

송승환 대표는 "이번 공연으로 받는 개런티는 약 1억7천만원으로 다른 해외 공연에 비해서는 절반밖에 안 되지만 단원들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사실에 의미를 두고 온 정성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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