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본격교류 길 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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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모스크바 항로개설 의미>
교통부의 서울∼모스크바간 정기항로개설 방침은 한소간 본격교류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 내년1월중으로 예정된 「한소간 영사관계의 수립」과 함께 우리 국적기에 굳게 닫혔던 시베리아항로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한소간 항공협의는 서울올림픽개최직전인 지난해 7월 대한항공 조중건 사장이 소련을 방문, 아에로플로트 항공사관계자들과 만나 상호영공통과 문제 등을 논의하면서 구체화됐다.
88올림픽기간 중 헝가리 등 동구권선수단 및 아프리카선수단을 수송하는 대한항공기가 소련영공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접촉의 결과였다.
이후 양측은 서울과 모스크바 등에서 계속 접촉, 영공통과·정기항로개설 등에 관해 협의해왔으며 소련측은 11월 서울에서 열린 항공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모스크바∼북경·상해·하얼빈∼서울·부산간 정기항로개설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대한항공측은 「선영공통과 후정기항로개설」을 요구, 협상이 결렬됐다.
대한항공이 직항로개설을 미루었던 표면상의 이유는 서울∼모스크바노선은 항로가 개설된다하더라도 이를 이용하는 승객이 적어 수익성이 없다는 것.
또 소련측은 서울∼모스크바간 중간기차지로 북경·상해·하열빈 등 3개 공항을 제안하고 있으나 한중양국은 항공협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들 공항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도 선영공통과를 내세운 이유중의 하나였다.
때문에 중국과 별도의 항공협정을 맺을 때까지 정기항로개설은 보류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항공의 당초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정기항로개설을 미루는 이면에는 한반도의 안보에 대한 정부의 우려도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순수한 여객수송뿐만 아니라 첩보업무까지도 수행하고 있은 것으로 알려진 소련국영 아에로플로트항공기가 서울·부산공항 등에 이착륙하고,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종단 비행할 경우 안보상에 문제점은 없을 것인가 하는 것이 정부의 우려다.
또 한반도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은 미국의 입장도 서울∼모스크바간 정기항로 개설결정에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소련측이 현실적으로 수익성이 없는 모스크바∼서울·부산노선개설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아에로플로트항공사가 수익과 관계없이 여객기를 운항하는 국영이라는 점외에 소련정부의 남방진출정책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교통부의 분석.
교통부는 그러나 한소간 영사관계가 수립될 경우 양국간의 경제적 교류는 급속히 확대될 전망이기 때문에 정기항로개설은 불가피하며 이를 통한 양국간의 관계개선은 오히려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교통부는 또 몰타해상에서의 미소정상회담이후 미소간 화해의 무드가 성숙돼가고 있어 미국 또한 정기항로개설을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교통부는 이 같은 판단에 따라 하바로프스크를 중간기착지로 하는 서울∼모스크바간 정기항로개설을 내부방침으로 결정, 이달 중 외무부·안기부 등 관련부처와 안보문제 등을 협의한 후 내년1월 업무보고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할 계획이다.
교통부는 또 내년 중 중국과 항공회담이 이루어질 것에 대비, 중간기착지를 하바로프스크 외에 북경·상해 중 택일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며 소련측 또한 이 같은 기본원칙을 수용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영공통과」를 요구했던 대한항공 또한 내부적으로 정기항로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1월 예정된 한소항공회담에서 교통부의 방침대로 하바로프스크를 중간기착지로하는 서울∼모스크바간 항공노선이 개설될 경우 대한항공기는 서울∼니가타(일본)∼하바로프스크∼스베르들로프스크∼모스크바∼레닌그라드∼헬싱키상공을 거쳐 유럽에 취항할 수 있다.
이 시베리아항로는 기존의 미국 앵커리지 기착노선과 비교하면 ▲서울∼파리는 2시간 ▲서울∼프랑크푸르트는 2시간50분 ▲서울∼런던은 4시간정도가 단축된다.
또 직항로선으로 으는 ▲파리∼서울은 3시간50분 ▲프랑크푸르트∼서울은 4시간50분이 각각 단축된다.
이 같은 비행시간 단축에 따른 운항비절감은 서울∼모스크바간 운항의 일시적인 적자를 메울 수 있다는 것이 대한항공의 계산이다.

<김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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