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동양적 사유 …'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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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여성주의(페미니즘) 미술의 역사는 짧다. 미술사가들은 우리나라 페미니즘 미술의 시작을 보통 1986년 열린 김인순.김진숙.윤석남 세 사람의 동인전 '반에서 하나로'로 삼는다.

이 가운데 윤석남(64)씨는"나를 여성주의 미술가로 불러달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작가다.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IF)'의 발행인을 맡았고 여성영화제와 여성미술제를 이끄는 등 활발한 여성 문화운동을 펼쳐온 그는 자신의 페미니즘을 "여성과 남성이 어우러져 모두 잘 사는 인류 평등의 세상"이라고 말한다.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늘어나다'는 윤씨가 97년 '이중섭 미술상' 수상 기념전 뒤 작업을 보여주는 개인전이다. 그는 90년대에 주로 가부장제의 희생자로서 어머니상을 형상화해 왔다. 헌 목재를 주재료로 한 그의 여성상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변기 민족의 회한과 고통을 가장 혹독하게 겪은 한국인의 얼굴이자, 마을 어귀에 서 있던 장승처럼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큰 나무의 의인화였다.

'늘어나다'전에서 작가는 이전 작품세계를 더 확장해가는 동시에 뛰어넘는 변신을 보여준다. 기다림과 인고의 세월을 암시하듯 길게 늘어난 팔은 그의 갈망을 담아 공간으로 뻗어간다. 충족되지 않은 욕망은 이제 그네타기를 하며 흔들리는 손 끝에서 한 송이 연꽃(사진)으로 피어난다.

전시를 기획한 김희령 전시감독은 "긴 팔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상징한다. 그가 그려낸 여성상은 억압받는 여성이 아니라 스스로를 거듭나게 하는 얼굴이다. '늘어나다'연작의 그네 타는 여성은 삶의 경험과 감정의 근원이 자연스럽게 묻어나 여성주의의 새로운 모색을 전한다"고 평했다. 02-2020-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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