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여성의 모습은 '팜므 파탈'? 롭스와 뭉크 판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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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 전시장에 벌거벗은 여성 그림이 이렇게 많이 모인 때가 있었을까. 아름다운 누드라기보다는 생각거리와 깨달음을 주는 누드의 여인이다. '롭스와 뭉크: 남자와 여자'전이 열리는 서울 정동 덕수궁미술관 1층은 근대 여성의 그림자를 다룬 두 화가의 판화 98점으로 오달지다. 바깥 땡볕이 몸을 자글거리게 한다면, 전시실 안 강렬한 그림은 마음을 오히려 서늘하게 만든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1863 ~ 1944)가 대표작인 '절규' '마돈나'로 낯익다면, 벨기에 화가 펠리시앙 롭스(1833 ~ 98)는 낯설다. 선보인 그림도 그만큼 다르다. 성(性)을 둘러싼 당대의 관계와 개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만 통한다. 롭스의 풍자화가 자기 시대의 거울인 반면, 뭉크의 표현주의 그림은 내면의 느낌을 드러낸다. 롭스는 사색하고 현실에 민감하지만, 뭉크는 자신에 대한 고통과 연민에 사로잡혀 있다. 두 화가가 다룬 남녀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근대 유럽이 어떻게 인간, 특히 여자를 바라보았는가 감이 잡힌다.

롭스는 여자를 남자의 가장 나쁜 적으로 묘사했다. 롭스의 그림에서 여성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해 지옥으로 빠뜨리는 악녀(팜므 파탈)로 나온다. 여성은 파괴와 몰락의 원인이며 남성을 바보로 만드는 환영이다. 날카로운 사회 풍자를 곁들인 롭스의 삽화는 동시대 시인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과 같은 여러 출판물과 언론에 실리며 화제를 뿌렸다.

뭉크는 근대 여성의 힘을 두려워했다. 그는 "나는 여성 해방의 한복판에서 무상(無常)한 시대를 살았다. 남성을 유혹하고, 사로잡고, 기만한 것은 여성이었다. 카르멘의 시대, 이 무상한 시대에, 남성은 더 연약한 성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전통적인 남녀상이 뒤집힌다. 여성은 강하지만 남성은 나약하다. 뭉크는 현대 사회에서는 남녀 간의 진정한 결합이 불가능하다는 걸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 끝에는 죽음이 있었다. 이제 남성과 여성은 외로움과 무기력에 빠졌다. 설명할 수 없는 절망과 번민, 고뇌가 남녀 사이를 갈라놓는다. 뭉크는 "숨 쉬고 느끼고 고통스러워하고 사랑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묘사하려는 강박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전시는 10월 22일까지. 02-2022-060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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