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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한국 페스티발 앙상블 창단 20주년 기념 음악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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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 페스티발 앙상블(음악감독 박은희)이 창단 20주년 기념 음악회를 열었다. '스무 살 생일 파티에 초대한다'는 형식의 음악회였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결같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겹지도 않나 싶을 정도로 페스티발 앙상블은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질 좋은 연주를 장기로 삼고 있지만, 그동안의 기획 의도도 돋보인다. 연주곡목을 선택할 때의 문제의식이 우선 좋다. 한국작품과 서양 현대음악 연주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것이 한 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기획한 여름축제는 음악회의 새로운 유형이 되고 있다. 박은희 감독은 음악을 원하는 '너'가 있는 곳이면 '나'는 어디든지 찾아간다는 식이다. 백화점.은행.공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20주년을 기념해 여섯 차례의 음악회를 기획했고, 그 전체 기획 개념의 맥락 안에서 생일 파티가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이날 밤의 의미를 더 즐겼을 것으로 믿는다. 생일 파티에서는 감상용 음악보다 행사용 음악이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정식 음악회에서는 음악만 등장하는 것이 관습인데, 행사 성격인 생일 파티라는 의미에서 파티의 메뉴는 관습과 달랐고, 스크린.무용.마임에다 박은희 감독의 코멘트까지 등장했다. 야나체크의 '현을 위한 모음곡'도 좋았고 노래들도 좋았지만 장 프랑세의 '목관 10중주를 위한 9개의 성격적 소품'(사진)이 필자의 마음을 특히 더 흔들었다.

객석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음악의 기원은 무엇일까. 음악은 감상용일까, 행사용, 그러니까 사용용(使用用)일까. 감상용 음악은 질이 높고, 행사용 음악은 질이 낮은 것일까. 그런 생각이 사회적 통념이 되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용 개념이 사회적 통념으로 부활한다면 어떻게 될까. 음악이 인간 앞에 존재하는 이유는 진정 무엇일까.

음악회는 요한 스트라우스로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었다. 생일 파티가 잘 끝나는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마임이 등장하고 생일 축하곡이 들렸다. 클라이맥스가 두 번 있으면 맥이 빠지는데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필자는 생일 파티 때문에 음악이 인간 앞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사용용 음악 개념을 긍정적으로 대변하려는 의도로 한국 음악사를 새로 쓴다면 어떻게 될까. 박은희에게 대답을 기대해본다.

이강숙<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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