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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약으로 버티는 선생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서울 A고 3학년담임 정모교사 (38)는 아침에 츨근하면 책상에 앉자마자 세알의 약을 꺼내먹는다. 두알은 십어먹는 위장약이고 한알은 드링크류와 함께 먹는 간장약.
올3월 새학기 시작과 함께 고3담임을 맡고부터 아침을 거르기 일쑤고 저녁식사도 밤11시가 넘는 경우가 많아 특별히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아프기전에 미리 위장약을 복용하고 있다.
게다가 일요일도 대입관계로 오전밖에 쉬지못해 월요일 아침부터 일요일까지 계속되는 만성피로감을 못이겨 습관적으로 간장약을 함께 먹는다.
정교사외에도 이 학교 교사 60여명중 아침이면 이런저런 약을 복용하는 교사는 줄잡아 20명선.
피로회복제에서부터 간장약·위장약·진해거담제,심지어 당뇨병 치료약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2년마다 정기건강검진을 받고있지만 그동안 무슨 병이 걸려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시간과 돈을 따로내 검진을 받을수 있는것도 쉽지않아 불안한 마음에 약을 먹는거지요.」
계속되는 격무,쌓이는 스트레스,열악한 근무환경,여기다 하루 7∼8시간씩 서서 가르치며 큰소리를 쳐야하는 고교교사들의 건강문제는 이제 교사들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사1명이 지난3월 폐결핵으로 휴직하고 있는 서울 K고교의 한모 양호교사(32·여)는 『2년만에 실시된 올 정기검사에서 폐결핵 판정이 나와 그 기간중 학생들에게 전염이라도 되었다면 그책임은 누가 져야하느냐』고 반문하며 『교사의 건강은 어린 학생들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책적 배려가 없는 것은 문제』 라고 지적했다.
과밀교실에서 학생들과 같이 살다시피하는 상황에서 그 어느 직종보다 세심한 건강관리가 필요한데도 이렇듯 민간기업보다 소홀한 건강관리를 한다면 학생들의 건강까지 허술히 다루는 것과 다름아니라는 얘기다.
그나마 실시되는 정기검진도 학교보건의 특성은 완전히 무시된채 형식적 검진에 머무르고있어 교사들의 신뢰가 낮은것도 또하나의 문제다.
최근 한국학교보건학회지에 발표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내교사 8백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기검진에서 질병이 있는것으로 판단된 교사는 98명으로 전체의 6·1%로 나타났으나 설문조사를 통해 몸의 이상을 호소한 교사는 5백77명으로 71·9%에 달했다.
물론 이상증상을 호소한 교사모두가 질병이 있다고 단정할수는 없지만 적어도 통계로 나타난 수치로 볼때 정기건강검진이 얼마나 요식적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건강검진에서는 간장질환자가 34명으로 가장많고 순환기 (31명) · 당뇨 (12명) 질환자 순이었으나 설문조사에서는 후흡기증상호소자가 3백20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이 소화기계 (3백15명) · 정신신경계(2백47명) 순으로 나타났다.
정밀검사가 아닌이상 호흡기계통의 초기이상증상을 찾기어렵고 더욱이 소화기계통의 진단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서울H고교의 김모교사 (41)는 『격년으로 실시하는 정기검진이다 보니 별로 신뢰가 안간다』 며 『이상이 있을때는 그때그때 병원을 가야하는데 시간에 쫓겨 건강관리에는 거의 신경을 못쓰고 있다』고 했다.
교사들의 실질적인 건강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것은 교사들의 사망원인중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일반인의 2배에 가깝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대구계명대 이성관교수가 75년부터 85년까지 사망한 전국교사 3천4백44명을 대상으로 사망원인을 분석한 결과 교사들의 사망원인중 암이 차지하는 비율이 31%로 일반인의 18%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조기진단 여하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것이 암이란 사실을 상기하면 교사들의 건강은 사각지대에 머물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함께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도 13·9%로 일반인의 8·1%보다 월등히 높아 교사들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입증해주고있다.
이처럼 교사들의 건강문제가 학교보건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는 것은 전용 의료시설이 없기때문.
서울의 경우만 시립학교 건강관리소가 있을뿐 지방의 경우는 보건소가 그 기능을 담당한다.
서울시립학교 건강관리소의 경우도 입원시설을 갖춘 병원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1차검진수준에 머물러있으며 그나마 타부처공무원들도 함께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상당수 교사들은 시설부족으로 서울시내 지정위탁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고있어 체계적인 건강관리란 사실상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일선교사들은 『철도·경찰·군등에는 자체병원이 있는데도 34만교원들을 위한 교원전용병원이 없다는것이 교원처우를 제쳐둔 처사가 아니냐』 며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국립교원 전용병원설립등 교사들의 건강관리대책이 절실하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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