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머리 터지는 '법정 게임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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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최고의 변론

앨런 M. 더쇼비츠 지음
변용란 옮김, 이미지박스
504쪽, 2만5000원

친구 사이인 마이크, 조, 멜빈이 함께 술을 마시다 말다툼을 벌였다. 홧김에 조가 마이크의 가슴에 권총을 쐈다. 그러곤 멜빈에게도 마이크를 쏘라고 위협했다. 멜빈은 쓰러진 마이크의 머리에 권총 다섯 발을 쐈다. 멜빈은 무슨 죄에 해당할까.

살인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법률적으론 그리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마이크가 조의 총을 맞고 이미 사망한 상태라면 멜빈의 살인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한다. 한 번 죽은 사람(시체)을 또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시체에 총질을 한 행위는 처음부터 '죽일 의도'가 있었는지 불분명하므로 살인 미수죄를 적용하기도 애매하다고 한다. 1973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이 사건은 6년 간이나 법정공방을 벌였다.

이 책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미묘한 사건들의 법정 공방을 상세히 보여준다. 하버드대학 법대가 형법 강의 부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데 딱딱한 법률서적은 아니다. 어려운 법률 해석보다는 상식적인 논리를 쉽게 전개한다. 특히 법정에서 벌어진 논리 게임이 흥미롭다. 일반 독자들도 읽기 편하다.

법조계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고 있는 대목도 관심거리다. 저자는 소송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변호사도 있으며, 판사가 뇌물을 받기도 한다고 비판한다.

판사에 대한 비판은 노골적이다. 수많은 판사들이 검은 법복 속에 부패와 무능, 편견과 나태, 그리고 야비한 성품과 우둔함을 감추고 있다며 통렬한 펀치를 날린다. 변호사에 대한 허상도 지적한다.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를 대변하는 영웅적 변호사는 드라마에나 나오는 허구라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 터져나온 대형 법조 비리와 연관해 읽으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럼 최고의 변호사를 고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 직업적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의뢰인을 위해 최선의 법적 결과를 성취하는 데 관심을 쏟는가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또 꼭 피해야 할 변호사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접근하는 유형이라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저자는 아내와 그의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로 풀려난 오 제이 심슨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다. 또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의 변론도 맡았던 '스타 교수'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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