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기독교 "화해의 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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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역사적 화해로 기록 될 고르바초프의 교황청 방문은 1845년 러시아 정교의 수장이었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바티칸을 방문한 이래 러시아 최고 지도자로선 1백44년만에 처음 있는 일로 앞으로의 역사 전개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고르바초프의 바티칸 방문에서 중점 토의 될 주요의제는 소련과 바티칸 사이의 공식 외교관계 수립과 그 동안 문제가 돼온 우크라이나 카톨릭교도 공인문제다. 소련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후 소위 「신에 대한 전쟁」을 선포, 교회재산 몰수, 사제와 신도 추방 등 대대적인 종교탄압을 단행했다.
특히 스탈린은 더욱 무자비한 종교 박해를 단행, 46년 소련 내 가장 큰 카톨릭 세력인 우크라이나 교회를 러시아 정교에 강제 흡수하고 일체의 종교활동을 금지했다.
그러나 신앙심 깊은 우크라이나 카톨릭 교도들은 그 뒤로도 지하 교회 활동을 계속, 지금도 교회가 없어 노천에서 예배를 올리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카톨릭은 교파 상 이른바 합동 동방 카톨릭으로 러시아 정교와 같이 독자적인 전례·습관을 지키지만 16세기이래 로마 교황의 수위 권을 인정해오고 있다.
로마 교황청으로선 우크라이나 카톨릭 문제 해결이 오랜 숙원사업이었으며 로마 교황은 박해받는 그들에게 교회를 되찾아줘야 할 일종의 종교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 동안 바티칸과 소련은 「물과 기름」의 부상용의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지난 85년 소련에 고르바초프 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았으며, 지난해엔 바티칸이 파견한 추기경이 모스크바에서 미사를 집전 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특히 현재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사회주의 국가인 폴란드 출신으로서 공산 정권의 종교적 박해를 몸소 체험한 사람이며, 유럽이 이데올로기적 차이로 인해 동과 서로 나눠지기 전 유럽이 기독교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던 시대로 복귀시키려는 원대한 비전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동유럽에 일고 있는 민주화 개혁에서 카톨릭이 맡고 있는 역할은 절대적이며 특히 폴란드· 체코·발트 해 국가들에서 카톨릭 교회는 중심 역할을 하고있다.
소련이 바티칸으로부터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페레스토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의 부산물이자 개혁의 가장 큰 장애 요소로 등장한 소련 내부의 민족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바티칸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다. 현재 맹렬한 기세로 번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발트 3국의 민족문제는 카톨릭의 협력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상태다.
그러나 이번 고르바초프의 방문에도 불구, 소련과 바티칸이 공식외교 관계를 맺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성스런 바다」인 바티칸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이 이른바 「일종의 항시 적 관계」로 외교관계 없이 정부 대표를 교환하는 방법이다. 바티칸과 신교 국가인 미국은 무려 1백17년간 이러한 관계를 거쳐 지난 84년 1월 정식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폴란드의 경우는 주 이탈리아 대사를 통해 이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이번 방문으로 소련과 바티칸 사이에 정상적 관계가 설정될 경우 교황의 내년도 소련 방문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며, 소련-바티칸 관계는 더욱 확대 될 전망이다.

<정우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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