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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스24시] 춤꾼들이 털어놓는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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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세계적인 춤꾼들이 조인스닷컴에 떴다. 비보이·탱고·스윙·라틴댄스·밸리댄스 등 각 장르의 최고 춤꾼들이 조인스닷컴 댄스칼럼(edu.joins.com)을 통해 그들의 ‘춤 인생’을 온라인에서 펼치고 있는 것. 우리나라 비보이(B-boy,일명 브레이크 댄서)들이 세계 최고 수준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 그 밖에 탱고의 한경아 씨(2004년 아르헨티나 탱고 세계대회 1위), 스윙의 이지선 씨(2005년 미국 린디합 챔피언십 프로암 부문 우승), 라틴댄스의 손나리 씨(라틴댄스 국제대회 프로페셔널 부문 준결승 진출), 밸리댄스 안유진 씨(한국 밸리댄서 1호) 등도 각 장르에서 손꼽히는 춤꾼들이다. 그 중 한씨와 비보이 황대균 T.I.P 팀장(99년 세계힙합페스티벌 한국대표)등 두 사람이 한바탕 춤인생을 털어놨다.

조인스닷컴 이임광 기자 llkhkb@joins.com

나는 HOT 멤버였다
'비보이의 황제' 황대균

내가 한때 10대들의 우상이었던 HOT의 창설 초기 멤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연은 이렇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5년. 교내 축제가 무르익을 즈음 한 남학생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현란한 춤 솜씨를 뽐냈다. 옆 학교에서 온 문희준(전 HOT 멤버.당시 고2)이었다.

춤이라면 중학생 때부터 댄스그룹(T.I.P)을 결성했을 정도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한 나였다. 곧바로 문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우리 둘은 불꽃 튀는 춤 대결을 벌였다.

이듬해 문씨와 함께 SM엔터테인먼트의 공개오디션에 지원해 합격했다. 이어 강타.이재원 등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총 10명으로 그룹이 결성됐다. 바로 HOT의 전신이다. 이후 피나는 연습이 거듭됐다. 그러나 데뷔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럴 무렵 타 기획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솔깃해 들어간 기획사는 비전이 없었다. SM에서 나온 지 6개월 만에 마지막까지 남은 5명으로 구성된 HOT가 장안을 휩쓸었다.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기회를 놓친 나는 백댄서로 전전하다 어느날 공연장에서 문희준.강타 등과 우연히 마주쳤다. 모두들 반가워했지만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이를 깨물었다. '나도 꼭 가수가 되리라.'

다시 기획사를 찾아다니고 가까스로 음반을 내보기도 했지만 꿈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좌절 속에서 일어나 다시 춤을 추었다. 미친듯이. 어느 날 한 PD에게서 연락이 왔다. 춤을 춰달라는 것이다. 실의에 떨던 날들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화려한 연예인보다 프로 춤꾼이 돼야 한다는 것을.

T.I.P를 부활시켰고 99년엔 세계힙합페스티벌에 한국대표로 출전했다. T.I.P 비보이의 부활은 곧 내 춤의 부활이었다.

노 대통령 위해 탱고 췄다
'탱고의 여왕' 한경아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11월 남미 순방 중 아르헨티나를 방문

했을 때였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환영 연회를 열었다.

연회 도중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갑자기 무대 쪽을 가리켰다. 무대 위에 화려한 드레스의 남녀가 나타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춤을 선보였다. '탱고'였다. 거기서 멋들어진 탱고 실력을 뽐낸 여자가 바로 나였다. 그해 세계 탱고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직후였다. 나의 탱고 무대는 한국 대통령을 위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

춤이 끝나자 두 대통령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세계 무대 우승은 내가 탱고에 입문한 지 꼭 3년 만이었다. 하지만 우승의 화려함 뒤에는 숨겨진 사연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타고난 '춤 끼'를 발산하지 못해 방황하고 반항했다. 자살도 수 차례 생각했었다.

딸이 의사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는 무용학과에 진학한 나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뮤지컬 배우로 8년 넘게 활동하는 동안 아버지는 한번도 공연장을 찾지 않았다. 야속한 마음을 춤으로 달랬다. 급기야 뮤지컬 배우를 그만두고 아예 '춤판'으로 나왔다.

밸리.재즈.라틴 등 온갖 춤을 섭렵했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탱고. 탱고는 상처받은 감성과 분출 못한 에너지를 한껏 표현할 수 있는 드라마였다. 탱고 입문 1년 반 만에 아시아대회 준우승, 다시 1년 후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연습 중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에도 진통제를 맞고 결승에서 투혼을 불살랐다.

춤으로 인정받기 위해, 세상에 그리고 아버지에게. 뮤지컬 배우로 내가 마지막으로 공연한 작품은 '페임(Fame)'. 스타를 꿈꾸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열정을 다룬 작품이다.

다음 꿈은 그 열정을 담아 아버지와 멋지게 탱고를 추는 것이다.

◇ 조인스에 연재 중인 춤꾼들 칼럼

▶밸리댄스=안유진 광주여대 무용과 교수 / 한국 밸리댄서 1호 / 안유진 교수의 밸리댄스 이야기

▶비보이=황대균 T.I.P 팀장 / 99년 세계힙합페스티벌 한국대표 / T.I.P Crew 비보이 황대균

▶스윙댄스=이지선 / 2005년 ALHC(미국 린디합 챔피언십) 프로암 부문 우승 / 사람이 묻어 나는 춤, 스윙 이야기

▶재즈댄스=박명수 수 댄스 컴퍼니 단장 / 재즈댄스 너의 끼를 느껴봐

▶탱고=한경아 / 아르헨티나 땅고 세계대회 1위 수상 / 화이의 아르헨틴 땅고

▶라틴댄스=손나리 살사인 아카데미 원장 / 국제대회 프로페셔널 부문 준결승 진출(한국인 최초) / Shall we Salsa?

▶댄스스포츠=이만호 국제댄스스포츠연합 부회장 / 이만호 원장의 타인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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