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기념비의 그림자가 /햇볕 쏟아지는 길 위에 누워 있다. /장미의 시간에서 독사의 시간으로 /웃음 짓는 시간에서 증오의 시간으로 /희망의 시간에서 절망의 시간으로 /그리고 그 절망의 시간에서 피가 멎는 죽음의 시간까지는 /단 한발자국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시집으로 소개된 84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체코 시인 세이페르트의 장시『페스트 기념 비』의 한 구절이다.
페스트 기념비는 17세기초에 있었던 30년 전쟁 직후 체코 수도인 프라하에 세워졌던 비석이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지배해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상징한 이 비는 1차 대전의 와중에서 민중 봉기에 의해 무너졌다. 그리고 프라하에는 모처럼 봄이 온 것이다.
그러나 68년 소련의 체코 강점은 프라하에 또 다시 겨울을 몰고 왔다. 이 시는 바로 약소 민족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은유하며 「프라하의 봄」을 노래한 것이다.
당시 체코 자유화의 기수였던 두브체크는 공산주의 5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동토에 봄바람을 몰고 온 풍운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67년 안토닌노보트니 후임으로 제1 서기에 취임하자 제일 먼저 한 일이 그 동안의 국정 기록을 보고 받는 일이었다. 그리고 과거 2O년 동안 공산당의 실정기록을 읽고는 『공산주의자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눈물을 흘렸다. 체코의 자유화 물결은 바로 두브체크의 이 눈물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비밀 경찰을 해체하고 당을 민주화시키는가 하면 오랫동안 봉해 놓았던 국민의 입을 열게 했다.
그러나 소련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는 하루아침에 프라하를 유린했고 두브체크는 수갑에 채어 모스크바로 연행되었다. 「프라하의 봄」은 불과 5백 일의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체코에 또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외신을 보면 연 10일째 계속된 수십만의 군중시위는 결국 공산당 지도부의 사임을 몰고 왔고, 프라하 시민들은 밤거리로 쏟아져 나와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다.
더구나 그 동안 산림 감독으로 있던 두브체크가 대중 집회에 나와 군중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또 다른 감회를 준다. 그의 가슴속에는 또 어떤 눈물이 흘렀을까.
두브체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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