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거물 리버먼 '이라크전 지지' 역풍 맞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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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을 강력히 지지해 온 민주당의 거물 조셉 리버먼(64.(左)) 상원의원이 8일 코네티컷주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패했다. 정치신인으로 약 52%의 득표율을 올린 백만장자 네드 라몬트(52.(右))에게 4%포인트 차로 패배한 것이다. 이날은 꼭 6년 전인 2000년 리버먼이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돼 각광을 받았던 날이다. 그런 그의 운명을 바꾼 건 이라크전이다. 그는 민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이라크전을 지지했고, 그게 패인으로 작용했다.

리버먼의 예비선거 통과 여부는 미국인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라크전에 대한 표심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시험대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리버먼의 패배 소식을 전하며 "이번 선거는 이라크전에 대한 일종의 국민투표였다"고 보도했다. AP통신도 "2500명 이상의 미군 생명을 앗아간 이라크전에 대한 국민정서를 알 수 있는 선거였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상원 의석의 3분의 1과 하원 의석 전체를 뽑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패해 자칫 상.하 양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현재보다 상원에서 6석, 하원에서 15석을 더 확보하면 다수당이 된다.

◆ 초당파 소용없다=상원의원 18년(3선) 관록의 리버먼은 초당파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워싱턴 포스트는 얼마 전 "늘 초당적으로 행동해온 리버먼을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사설을 썼다. 리버먼은 1998년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 클린턴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라크전과 관련해선 각종 비난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입장을 지켰다. 지난해 11월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나는 민주당원이 아닌 나라의 상원의원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내용의 글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공화당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민주당원은 달랐다. 그를 배신자로 봤다. 경쟁자 라몬트는 자신이 소유한 케이블 TV를 적극 활용해 리버먼을 부시의 꼭두각시로 깎아내렸다. "리버먼을 찍으면 부시를 지지하는 것"이라는 라몬트의 구호는 적중했다. 리버먼은 줄기세포, 세금감면, 지구온난화 등과 관련해 부시와 입장이 다르다고 호소했지만 당원에겐 잘 통하지 않았다.

◆ "후반전이 남았다"=리버먼은 라몬트에게 축하한다면서도 곧바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며, 후반전에는 역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엔 경선결과에 불복하면 본선거 출마를 금지하는 한국의 선거법과 같은 게 없다. 리버먼은 민주당의 일부 고정표와 공화당.무소속 표를 다지면 11월 선거에서 승산이 있다고 주장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8월 10일자 14면 '미국 민주당 거물 리버먼 예비선거 패배'기사 중 이라크전의 미군 사망자 수를 2만5000명이라고 썼는데, 2500명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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