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서울로 서울로…텅빈 농촌 학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농촌 국민 학교는 겉만 있고 속은 없습니다. 도시보다 나은 것이라고는 맑은 공기·자연뿐이죠』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해변국도에서 남쪽으로 2km떨어진 물메 국민학교. 75년 2백56명이던 학생이 89명으로 줄어 한 학년 당 한 학급뿐인 「단급 학교」다. 『교육환경의 낙후로 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도시학교로 옮겨 분교는 없어지고 학교는 분교화 되는 악순환이 거듭됩니다』
이 학교 김권철 교장(60)은『학급당 학생수가 15명 이하면 분교로 격하되는 까닭에 작년부터 마을주민들로 학교발전위원회를 만들어 고향 안 떠나기 운동을 펴고 있으나 주민들이 분교가 되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해 걱정이 태산같다』고 했다.
분교가 될 경우 교사1명, 강사 1명, 기능직 고용원 2명 등 4명으로 복수수업을 하게돼 현재 단급 학교보다 교육여건이 더나빠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애월읍 여도 국교·화전분교가 학생이 1명밖에 남지 않아 폐교됐다.
단급 학교 최하 정원 90명에 1명이 모자라는 89명이지만 턱걸이 단급 학교를 유지하고있는 물메 국교는 교무실을 제외하고 교실은 6개. 그나마 1개 교실은 부설유치원(13명)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1개 교실이 모자라 1학년과 2학년은 1개 교실에 칸막이를 쳐 둘로 나둬 쓴다.
『과학실 이라고요? 있긴 있습니다』
3학년 교실 뒤쪽 책상 속과 책상 위에 실험기재를 두고 과학실로 이용한다. 기재도 97종 9백57점이 있으나 기준 1백10종 2천3백37점에 비해 41% 수준이며 대부분이 낡아 교육적 효과를 거둘 실험수업을 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과학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이에 3학년학생들은 이틀에 한번씩 다른 학년교실로 옮겨다니며 수업을 합니다』 3학년 담임교사는 『담임 반 학생들이 「우린 이사만 다니는 더부살이 학년」이라고들 불평할 땐 가슴이 저민다』고 했다.
유일한 시청각 교재인 VTR한대도 마땅히 둘 곳이 없어 2평 짜리 숙직실에 설치, 시청각 영상수업 땐 학생들이 숙직실에서 식탁을 펴놓고 수업을 한다.
이 학교에 가장 많은 것은 풍금. 5개 교실에 1대씩 있지만 재일 교포가 20년 전에 기증한 것으로 1대도 음이 제대로 나는 게 없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교사들은 음악시간이면 구색을 맞추는 식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교사들은『학생수가 적어 개별지도로 학업성과가 좋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20년 전과 똑같은 과학실 등 열악한 벽지학교의 교육여건으로 의욕과 사명감 마저 흔들릴 때가 많다』고 했다.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혈동1리 금명국교 혈동 분교. 교사 2명이 1·2·3저학년과 4·5·6고학년 2학급을 맡아 3복식수업을 한다.
전교생은 1학년 5명, 2학년 1명, 3학년 2명, 4학년 2명, 5학년 3명, 6학년 2명 등 모두 15명. 손꼽을 만한 교재는 독지가로부터 기증 받은 VTR 1대, TV 2대, 녹음기 4대, 슬라이드등이 있다.
그러나 거의 10년이 넘은 것인데다 3개 학년이 한 교실에서 각기 다른 공부를 하기 때문에 활용 할 수 없다.
교실도 4개중 1개는 교무실, 다른 1개는 장기판과 조립식 놀이기구 1세트, 책 3백 여권이 갖추어진「꿈나무 교실」. 나머지 교실 2개로 저학년과 고학년이 쓰고 있으나 이중 저학년 교실은 반을 쪼개 과학기재를 두고 과학실이란 이름을 붙여놓았다.
홍병욱 분교장(41)은『도농 간 교육 환경 격차가 심하고 교육기자재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소인수학급과 복식학급에 대한 다양한 교과과정·교재개발이 뒤따르지 못해 큰 문제』라고 했다.
특히 벽지 어린이들에게 심각한 것은 문화적 경험부족으로 자신의 생활평가와 자발성이 둔화되는 점이라고 들고 도시학생들처럼 경험의 범위를 다채롭게 해줄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한다고 강조한다.
지난8월 서울 구로 백산 국교에서 동생(1학년)과 함께 이 학교로 전학 온 3학년 신지원양 (10)은 수업에 흥미를 잃고 걱정에 싸여있다.
『서울에서는 아침마다 TV로 영어·한자공부도 하고 직원조회모습도 보았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재미있는 TV과학영화를 볼 수 없어 답답해요. 학생수가 적어 좋지만 서울 친구들에 비해 공부가 뒤질 것 같아 마음이 안 놓여요』
이뿐만 아니다. 서울에는 컴퓨터교실이 있는 학교가 많은데 시골에는 왜 없느냐고 반문한다. 서울의 경우 4백 48개 국교 중 80%가 넘는 3백 80여개 학교가 컴퓨터교실을 갖추고 있으나 도서벽지학교에서는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벽지학교의 대명사인 단급 학교는 1천 1백 51개, 복식학급은 4백 8개. 여기다 2백 10개 낙도학교를 포함한 도서벽지학교는 1천6백4개교. 교육여건은 북제주의 물메 국교나 춘성군의 혈동분교와 다를 바 없다.
『도서벽지학교의 이 같은 교육환경은 상대적으로 교사들의 근무의욕을 떨어뜨려 교사들 중에는 승진시험준비에 치우치는 경향이 없지 않고 지난해부터 낙도·벽지 근무기피 현상 등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있습니다.』
한준상 연세대교수는『도서·벽지교육의 활성화와 그 지역사회안정을 위한 실질적인 도서·벽지교육정책이 마련되지 않아 학교의 존속 가능성을 잃고 있어「좌초하는 벽지교육」이 되고있다』고 했다. <탁경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