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칼날 각도 맞추는 데만 4년, 커피 정교하게 갈려 입자 균일

중앙선데이

입력 2021.08.21 00:25

업데이트 2021.08.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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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24면

[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커피 그라인더 코만단테

커피 그라인더 코만단테는 원두를 정확하고 예리하게 갈아낸다. [사진 윤광준]

커피 그라인더 코만단테는 원두를 정확하고 예리하게 갈아낸다. [사진 윤광준]

어딜 가나 커피숍과 마주친다. 그 규모와 숫자에 놀랄 정도다. 지난해 커피 수입량은 16만 6000t(2020년 관세청)이다. 잔으로 환산하면 한 사람 당 353잔 정도가 된다. 세계 평균이 132잔이니 다른 나라 사람들의 세 배나 많이 커피를 마시고 사는 셈이다. 시장 규모는 연간 6조원 정도이고 그 중 스페셜티의 규모도 1조원이 넘는다니, 가히 ‘커피 공화국’이다.

칼날, 손이라도 베일 만큼 예리
고정축 흔들림 없이 매끄럽게 회전

가루, 필터 안 막아 추출 속도 일정
이전에 맛보지 못한 풍미·바디감
기존 기계, 커피 으깨고 있었을 뿐

난 30년 전 쯤부터 직접 원두커피를 갈아 내려 마셨다. 작업실을 찾는 이들에게 직접 커피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커피 믹스의 달달한 맛에 길들여져 있던 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리고 뒷담화가 무성했다. 커피 갖고 폼을 잡는다는 둥, 유난을 떤 커피 맛 치곤 시원치 않다는 둥, 별 소리가 많았다. 그러던 그들이 슬그머니 좋다는 원두를 사러 다닌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직접 내려 마시는 이들도 많다.

최근 대한민국 커피 판의 분위기는 세계를 앞서가는 느낌이다. 좋다는 원두는 다 수입되며, 희귀하고 비싼 스페셜티만찾는 수요도 만만치 않다. 밀라노나 파리나 도쿄의 유명 커피숍에 뒤지지 않는 깊은 풍미의 커피를 웬만한 곳에서는 다 내놓는다. 매장 분위기도 세련되고 드나드는 이들의 수준도 높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어울려 커피를 즐기는 모습은 서울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뒤처져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새 앞서가기 시작했다.

커피 바람은 내 주변에도 불었다. 가까운 친구는 로스팅 실력을 인정받아 자신의 커피를 상품화 시켰다. 손으로 돌리는 수망과 직화 기법을 고집스레 지속하고, 손목에 이상 증세까지 생길 정도로 노력한 성과다. 온도와 시간에 따라 진행되는 원두의 팝핑 상태를 눈으로 보고 냄새만 맡아도 안다. 경험과 세치 혀의 감각만으로 자신의 커피 맛을 만들어냈다. 또 한 친구는 철저한 데이터에 근거한다. 컴퓨터 로스팅 프로그램을 운용해 일정한 온도와 시간 맞추는 걸 철칙으로 삼는다.

커피 그라인더 코만단테는 원두를 정확하고 예리하게 갈아낸다. [사진 코만단테]

커피 그라인더 코만단테는 원두를 정확하고 예리하게 갈아낸다. [사진 코만단테]

각자의 선택과 확신으로 로스팅 된 커피는 두 친구의 성격만큼 다른 맛을 드러난다. 커피는 와인처럼 자연이 만들고 사람이 개입되어 완결되는 세계였다. 덕분에 입만 달고 다니면 되는 나는 즐겁고 분주해졌다.

새로운 경향에 눈감고, 낡은 반복을 고집하는 구력은 자랑해선 안 된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의 종류와 추출법은 모르는 게 더 많았다. 커피 전문지의 편집장으로 활약하는 친구를 만나게 된 이후의 자각이다. 그는 세상의 여러 커피 산지를 직접 찾아가 좋은 원두의 특성과 판별법까지 익힌 해박함으로 생동감 있는 정보를 소개했다. 온갖 스페셜티를 맛보게 해줬고 실력 있는 바리스타들의 노하우까지 일러줬다. 새로운 도구의 새로운 용법도 일깨워줬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수록 커피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유명 바리스타의 커피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같은 원두를 쓰는 데도 맛의 차이가 난다면 커피 내리는 사람의 실력 문제다. 커피의 맛은 원두의 선택에서 8할, 도구에서 1할, 그리고 내리는 사람에 따라 1할의 역할로 달라진다. 나의 커피가 시원치 않았던 이유도 평소 쓰던 도구의 문제거나 습관 혹은 적용이 잘못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방법을 개선해야 했다. 앞서가는 친구들이 조언을 해줬다. “우선 그라인더를 바꿔보는 게 어때?”

그때까지 그라인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못했다. 나름 심사숙고해 고른, 좋다는 물건이었던 까닭이다. 주물로 만든 수동 분쇄기와 세라믹 맷돌 방식의 전동식을 10년 가까이 써왔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미분이 많이 생기는 기존 내 그라인더의 방식과 성능의 미비를 지적했다. 고운 가루가 필터를 막아 늘어난 추출 시간 탓에 깔끔한 맛을 내지 못하다는 진단도 곁들였다.

그라인더 하나를 추천해줬다. 독일에서 만든 코만단테(COMANDANTE)였다. 오래 전 독일의 명품이라는 자센하우스 제품을 써 본 적이 있다. 유명세만큼 흡족하지 않아 실망했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고정되지 않는 본체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핸들을 돌리는 수동 그라인더는 사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코만단테는 달랐다. 만들어진 시기의 격차만큼 개선된 기술과 질 좋은 철강 소재를 쓴 변화라고나 할까. 본체를 둥근 원통으로 바꾸어 잡기 쉬웠고, 작동이 부드러워  힘이 덜 들었다. 양손으로 교차하듯 돌리면 된다. 암수의 톱날이 맞물려 회전되는 수동 그라인더의 구조는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매끄럽게 돌아가는 핸들의 조작감은 놀랄 만했다.

코만단테를 써 볼수록 감탄이 이어졌다. 갈리는 감촉이 평소 쓰던 그라인더와 전혀 달랐다. 커피의 굳기가 손끝에 느껴지고 정해진 입자 크기로 정확하게 갈리는 느낌이랄까. 예리한 칼날로 단번에 토막 내는 쾌감마저 들었다.

본체를 분해해 칼날을 보고 이유를 알았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칼날의 정밀도가 대단했다. 정해진 각도로 칼날이 만들어지지 않아 출시를 4년이나 미뤘다는 제작자의 결벽을 수긍할 만 했다. 원추형 칼날을 쓰는 여느 그라인더는 5줄의 파인 홈과 무딘 날이 보이지만, 코만단테는 파인 홈이 7줄로 촘촘하고, 손이라도 베일만큼 날카롭다. 홈 하나에 한 알의 커피가 끼어 갈리는 폭이다. 게다가 고정축 양쪽에 정밀한 베어링을 넣어 흔들리지 않고 매끄럽게 돌아간다.

코만단테로 간 커피 입자는 소문대로 균일하고 미분이 적었다. 필터를 막지 않으므로 통과하는 물의 속도가 일정했다. 2분 20초 내외의 추출 속도를 지킨 커피는 이전에 맛보지 못한 깊은 풍미와 묵직한 바디감을 냈다. 평소 쓰던 전기 포트로 물을 끓이고 드립용 황동주전자로 옮겨 온도를 맞춘 건 그대로다. 3박스나 남은 종이 필터를 바꾸었을 리 없고, 오래 써서 커피 진이 묻은 콘형 드리퍼도 그대로다. 커피를 고르게 갈았을 뿐인데 이런 변화가 생긴다는 걸 어떻게 수긍해야 할까. 지금까지 쓰던 그라인더는 커피를 으깨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후 커피 마시는 횟수가 늘었다. 이전과 다른 커피 맛이 신기해서였을 것이다. 이제 이디오피아 우라가나 수염이 난 악당을 연상시키는 과테말라 안티구아에도 자꾸 손이 간다. 세계엔 93곳의 대표적인 커피 산지가 있다는 데, 모두 섭렵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나는 비원 커피의 주인장이다. 더 맛있는 커피를 탐하더라도 해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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