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독사 비늘 녹색, 인디언 레드…자연 그대로 ‘색의 향연’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31 00:21

업데이트 2021.07.31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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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22면

[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그라폰 파버카스텔 잉크

명품 이야기 [사진 윤광준]

명품 이야기 [사진 윤광준]

정확히 18년 전 하루 동안 책 3000권에 서명을 한 적 있다. 작가 선언을 한 후 펴낸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잘 팔려 특별판인 저자 사인본에 들어간 거다.

화학 염료 대신 천연화합물 이용
다채로운 색, 다양한 용도로 쓰여

병 디자인도 웅장한 건축물 연상
만년필 부수품 아닌 고급 상품화

물류창고에 준비된 책은 방 하나를 다 채울 정도였다. 사인할 책장을 넘기고 받아주는 알바생까지 동원했다.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랄까, 작가의 친필 사인이니만큼 만년필로 해야 할 것 같았다. 평소 쓰던 몽블랑과 잉크를 준비했다.

처음엔 힘들지 않았다. 내 책에 반응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점을 실감했고 팔리는 만큼 쌓이는 인세 수입의 기대도 컸으니까. 100권, 200권 넘게 글씨를 쓰다 보니 손목과 팔이 아팠다. 만년필을 쥐었던 오른손 중지는 자국으로 움푹했다. 손목은 욱신거렸고 온 팔에 어깨까지 저렸다.

지나고 보니 손목의 통증은 만년필 때문에 가중된 것임을 알았다. 높은 경도의 일반 필기용 펜촉 탓이었다. 글씨가 가늘게 써지므로 힘을 더 줄 수밖에 없다. 사인용 만년필의 펜촉은 부드럽게 휘고 글씨의 굵기도 굵으며 힘도 훨씬 덜 든다.

매끄러운 필기감을 내는 전용 잉크가 따로 있다는 것도 알았다. 흘리듯 서명하는 기업체의 회장이나 국가원수의 만년필은 굵고 술술 써진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정확한 용도로 쓸 때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평소 사인할 일 없는 무명작가는 만년필이 다 똑같은 줄 알았던 거다.

학창 시절 파이롯트와 아피스 만년필을 쓸 땐 파카가 제일 좋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만년필의 세계엔 고봉이 즐비했다. 몽블랑, 비스콘티, 에스티 듀퐁, 셰퍼, 그라폰 파버카스텔…. 내친김에 이들 만년필을 두루 써 보게 됐다.

만년필에 다양한 잉크를 넣어 쓰는 느낌은 색다르다. [사진 파버카스텔]

만년필에 다양한 잉크를 넣어 쓰는 느낌은 색다르다. [사진 파버카스텔]

각 브랜드의 특성은 사람의 개성만큼 다르다. 몸통의 굵기와 재질을 달리한 디자인과 고유한 펜촉의 느낌이다. 셀룰로이드와 금속, 목재의 물성이 다른 만큼 손의 감촉과 쥐는 맛에 차이가 난다. 글씨체조차 달라질 정도다. 펜촉의 경도와 재질의 선택도 중요하다. 펜의 끝부분인 닙(Nib)의 재질이 스테인레스강이라면 딱딱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종이에 닿아 사각거리는 소리도 크다. 좋은 만년필이라면 닙의 재료로 금이나 백금, 이리듐이 사용된다. 필기의 감촉은 휘어질 듯 부드러우며 매끄럽다. 소리는 경질의 닙에 비해 톤 다운된 듯 묵직하다. 대형 승용차의 6기통 엔진 배기음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좋은 만년필은 당연히 좋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기본 이상의 필기감과 디자인의 출중함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나머지 반이 문제가 된다. 아무리 좋은 만년필이라도 제 손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너무 굵거나 가늘게 느껴질 수 있다. 닙의 유연함이 외려 부담되고 나사식으로 돌려 끼워야 하는 뚜껑도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검정 일색의 구색에 반발심이 생기기도 한다. 제 손에 꼭 맞아 만족스러운 필기감까지 주는 만년필은 두루 섭렵해 보기 전엔 알 턱 없다.

이렇게 나만의 만년필은 나무로 만든 그라폰 파버카스텔로 정착됐다. 굵은 연필의 감촉처럼 다가오는 굴곡진 질감이 좋았다. 여기에 낭창하게 휘어지는 금색 펜촉의 텐션도 마음에 들었다. 몇 년을 사용하는 동안 내 손에 먼저 감기는 듯한 만년필의 익숙함은 대처할 게 없다.

좋은 만년필은 걸맞은 잉크를 넣어 줘야 제 실력을 발휘한다. 지금까진 대부분의 잉크는 검정색과 청색뿐이었다. 나 역시 잉크까지 관심이 미치지 못했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검색해보니 잉크 또한 만년필만큼 다채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전에도 만년필 동호회 활동을 하는 후배에게 희귀한 빈티지 잉크 시필회 소식을 듣긴 했다. 잉크 또한 오래 묵어 깊고 안정된 색감과 향기마저 풍기더라는 뻥과 감탄이 교차됐을 극성스런 애호가들의 체험담이었다. 당연히 흘려버렸다. 그랑크뤼급 와인 시음회에 참석한 이들의 말의 향연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빈정거림이었을 것이다.

나만의 만년필을 찾게 된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몇 년 동안 길들여 매끄러워진 닙의 감촉을 더욱 향상시키고 단조로운 잉크 색깔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극소수의 사람들끼리만 입수해 나누어 쓴다는 전설의 잉크에도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 정성이 미치진 못했다. 그들 속에 속할 숫기도, 만날 시간의 여유도 없다. 언젠가 오사카나 교토의 만년필 수리점에서 봤던 낯선 잉크의 정체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타이어 없이 자동차가 구르지 못하듯, 잉크 없이 만년필은 써지지 않는다. 더 좋은 승차감을 위해 타이어 선택에 신중을 기하듯 필기의 감촉을 위한 잉크에 민감해졌다.

말은 무성한데 국내에서 좋은 잉크를 취급하는 곳이 드물다. 100만 원 넘는 만년필은 수입하면서 잉크는 이상하리만큼 관심이 없다. 이상했다. 매출에 별 도움 되지 않는 잉크라서 그럴 것이다. 만년필을 글씨 쓰는 용품으로 한정시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년필을 문화의 상징으로 본다면 그 의미는 자못 커질 듯하다. 사람들의 기분과 생각이 다양한 색깔의 잉크로 표현되어 신선함을 느낀다면 그 반향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현대의 만년필은 글씨만 쓰는 물건이 아니다. MZ세대가 낡은 LP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열광하듯 만년필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새로운 것은 실감되는 과거의 흔적들이다.

그라폰 파버카스텔 잉크가 나온 건 이런 시대의 변화를 읽은 대처였다. 잉크를 보석이나 향수 취급해, 만년필의 부수 용품을 넘은 단독 상품으로 부각했다. 크롬 광채의 뚜껑과 넉넉한 어깨선 안정된 비례감을 지닌 잉크 병 디자인은 당당한 위용의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훌륭한 미감으로 마무리된 디자인만으로도 시선을 끌어모은다. 젊은 세대 용어로 ‘있어빌리티’ 넘치는 물건이 되었다.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잉크색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보는 색상이 많다. 독사의 비늘 색을 그대로 옮긴 듯한 녹색, 인디언 레드, 헤이즐넛 브라운…. 다채로운 색은 이제 만년필로 글씨만 쓰는 시대가 아님을 일러준다. 표현의 도구로 캘리그라피나 일러스트 용도로 확장시킨다. 필기감은 미끄러질 듯 매끄럽다. 화학 염료에 윤활제를 섞어 만든 일반 잉크 대신 천연 화합물로 바꾼 변화다. 잉크가 마치 송진을 태워 만든 우리의 먹 느낌에 가까워졌다고나 할까.

난 서명용으로 쓸 청색 잉크가 필요해 비슷한 색상을 다 사들였다. 깊은 밤의 블루, 황실의 블루, 코발트 블루…. 청색의 단계와 느낌이 이토록 다채로울 줄 몰랐다. 일본의 영향으로 검정 잉크로 서명을 많이 한다. 하지만 서명은 청색으로 하는 게 옳다. 복사되더라도 원 인쇄와 구분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1만 권의 책에 서명하는 꿈을 꾸었다. 이전과 달리 선명한 청색 그라폰 잉크를 썼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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