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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눈깜빡’ 지켜보자 했던 병원…“뇌성마비 책임, 8억원 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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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중앙포토

신생아. 중앙포토

출생 후 과다호흡과 눈 떨림 증상을 보인 신생아에게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뇌 손상으로 인한 발달장애를 일으킨 병원 측이 산모에게 8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민사14부(부장 김양훈)는 5세 A군의 부모가 B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병원장 C씨와 담당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D씨는 A군 측에 8억3600여 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 사건 원고인 A군은 2016년 7월 21일 경기 수원시 소재 B병원에서 출생했다.

A군은 출생 당시 분당 호흡수가 60회 이상인 과다호흡, 즉 빈호흡 증세를 보였고 의료진은 A군에 대해 7시간 이상 산소 치료를 했다. 그 결과 A군은 분당 호흡수가 60회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튿날 오전 A군은 얼굴에 청색증 증상을 나타냈다. 손끝과 입술 등도 푸르게 변하는 등 ‘산소 부족’ 신호를 보였다. 한쪽 눈을 30~40초간 눈을 깜빡이며 떠는 증세도 두 차례 관찰됐다.

간호사는 이런 증상을 동영상으로 찍어 전문의 D씨에게 보고했지만, D씨는 경과 관찰만을 지시했다.

하루 뒤 퇴원을 앞둔 23일 오전 회진하던 담당의 D씨에게 눈을 깜빡거리는 증상에 대해 “퇴원 후 1∼2일 지켜보고 증상이 계속되면 외래 진료를 보거나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그러나 A군의 부모는 불안한 마음에 퇴원해 곧바로 대학병원을 찾아 뇌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A군은 ‘신생아 경련’ 진단을 받았다. 이어진 뇌 MRI 판독 등 정밀 검사에서 A군은 ‘허혈성 저산소성 뇌병증’이란 진단을 받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한 A군은 현재 뇌 손상으로 인해 사지 근력 약화, 인지 및 언어장애를 포함한 전반적인 영역의 발달장애, 사지 경직 상태다.

A군의 부모는 당시 신생아 경련 증상을 보인 A군에게 B병원 측이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26억원을 배상하라고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분만 후 A군에게 두 차례 청색증이 나타났는데도 정밀 진단을 위한 검사를 하지 않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A군 부모의 주장을 받아들여 병원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A군 출생 후 빈호흡 등이 나타나 7시간 30여분간 산소요법이 시행됐는데, 시행 약 6시간 경과 후까지 호흡수가 60회 이상인 빈호흡이 있었다”며 “이런 점 등에 비춰볼 때 피고는 계속 경과 관찰을 하고, 적극적 조처를 할 의무가 있었으나 조처가 미흡했다”고 설명했다.

또 “허혈성 저산소성 뇌병증은 신생아 경련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전체 신생아 경련의 60∼65%에 이른다”며 “A군은 지속해서 눈을 깜빡이는 등의 양상을 보였고, 간호사는 이를 보고했으나 피고는 경과 관찰만을 지시했을 뿐 다른 검사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의료행위는 예상 외의 결과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고도의 위험한 행위인 점, 분만 전후의 저산소증이 뇌성마비를 일으키는 인자 중 하나이나 이 사건에 원인 불명의 다른 원인이 개재됐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모든 손해를 의료진에게만 부담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군의 일실수입(잃어버린 장래의 소득) 5억2000여만원과 치료비 등을 포함해 총 26억원 상당의 손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형평의 원칙 등을 이유로 들어 배상책임의 범위를 30%로 제한해 최종 8억원 규모로 배상액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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