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외환은행 서태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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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건물에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외환은행을 홍보하는 이 플래카드에는 '외환은 역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이 은행 모델인 배우 한석규씨, 한스베르나르트 메어포르트 부행장과 함께 '세계 최고 위폐 감별 전문가' 서태석 부장의 모습이 담겨 있다.

외환은행 금융기관영업실 서태석(60)부장에게는 아직 '부장'이란 직함이 낯설다. 1969년 일용직으로 외환출납계에 입사한 그는 73년 정식직원(서무원)이 된 뒤 행원(83년).대리(92년).과장(96년)에 오르고 2001년 8월 과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다.

입사 후 정년퇴직 때까지 과장 직급이 전부였지만 그는 정년퇴직 후 승승장구했다. 다른 은행에서 그에게 '특급 대우를 해주겠다'며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기 때문이다.

외환은행도 2001년 8월 그가 정년에 이르자 전문가를 뺏길 수 없다고 판단, 그에게 부부장직을 약속하고 2년 계약을 했다. 올 8월 2년 계약이 끝날 때엔 그에게 '부장에 연봉 1억원'을 보장했다.

"군을 제대한 후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어떻게 은행에 들어오려고 하느냐. 상고에서도 1~2등은 해야 한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거든요. 간신히 일용직으로 잔돈 바꿔주는 업무로 시작했지요."

중학교 중퇴라는 학력 탓에 69년 1년 연봉이 13만원(월급 1만1천~1만3천원)에 불과했다. 그가 은행에서 전문가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위조지폐 감별 능력 때문이었다. 64년부터 40개월간 카투사로 군복무한 그는 미군의 월급과 환전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그는 우연히 한 흑인병사가 잔돈으로 바꿔 달라며 내민 20달러짜리 지폐를 보고, 위폐임을 밝혀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미군 장교로부터 위폐 감별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

위폐감별 능력은 외환은행에서 잔돈을 바꿔주는 업무를 할 때도 발휘됐다. 이때 그는 네 차례 위폐를 발견, 당시 출납 책임자가 여러 차례 상을 받는 데 기여했다.

"당시 저는 정식직원이 아니라서 상을 받을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내가 가짜 돈을 찾아낸 것에 가슴 뿌듯했습니다."

그는 군생활 3년, 직장생활 35년 등 38년을 가짜 돈을 찾는 데 보냈다. 그의 실력은 미국 수사당국이 직통 라인을 개설, 업무 협조를 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공인받았다. 그는 요즘도 31개국 화폐를 하루 평균 1만3천여장씩 직접 확인한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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