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쫄딱 망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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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40기KT배왕위전'

<도전 5번기 제2국>
○ . 도전자 이영구 5단 ● . 왕 위 이창호 9단

제4보(38~54)=백?의 절단에 흑?의 뻗음. 지금은 당연해 뵈는 이 한 수가 이영구 5단의 의표를 아프게 찌르고 있다. 시청 2층에 마련된 검토실에선 서봉수 9단이 "응수가 어렵다"며 여러 가지 변화를 그리고 있고 그 곁에서 김성룡 9단이 "이 코스만은 절대 안 되는데…"하며 한 그림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영구가 바로 그 절대 안 된다는 코스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서봉수.김성룡 두 사람이 모니터를 보며 "어어"하고 비명을 지르는 동안 실전의 변화가 순식간에 진행됐다. 백이 흑 두 점을 잡고 귀를 통째 내주는 변화다. 백이 얻은 실리는 4집, 흑은 귀+세력.

"왜 이렇게 두지? "(서봉수)

"쫄딱 망했네."(김성룡)

그러나 이영구 5단은 낙천가답게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왼쪽 흑 세력을 지웠고 선수를 잡았으니 둘 만한 것 아니냐며 스스로에게 유리한 해석을 만들어냈다. 하나 거의 대부분의 프로는 이 변화에 부정적이었다. 능률을 추구하는 바둑에서 '쌈지 뜨기'나 '포도송이'야말로 비능률의 표상이다. 그런데 46까지의 결과가 거의 쌈지뜨기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실전의 40으로는 '참고도' 백 1 쪽에서 막고 이후 14까지의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논산의 검토실은 물론 서울의 검토실까지 비난의 소리가 합창으로 울려퍼지고 있건만 이영구는 느긋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48로 갈라친 다음 54의 굳히기. 이래서 한 판의 바둑 아니겠느냐고 스스로를 달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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