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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탄소부채' 도입, 이자도 물려야…'탄소중립' 네이처 논문

중앙일보

입력

크고 작은 빙산이 떠다니는 피요르드가 내려다보이는 그린란드 남부의 나르삭 마을 언덕에 야생화가 피어있다. 지구 기온상승이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빙하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크고 작은 빙산이 떠다니는 피요르드가 내려다보이는 그린란드 남부의 나르삭 마을 언덕에 야생화가 피어있다. 지구 기온상승이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빙하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 사회에서는 온실가스 순(純)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 중립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한국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지난해 10월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금융 부채처럼 탄소 흡수 의무 부여 #현재-미래 간 배출권 거래하는 방식 #이자 지불한다면 '상환' 연기 가능해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지만 100% 줄일 수 없기 때문에, 대기 중에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까지도 흡수하는 순 이산화탄소 제거(CDR)가 중요한 수단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대기 중에 배출된 온실가스를 거둬들이는 게 말처럼 쉬울까.

오스트리아 국제 응용시스템 분석 연구소와 영국·미국·독일·러시아 등 국제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에서 기업들에 배출한 온실가스를 흡수·제거하는 책임을 지우는 아이디어인 '탄소 부채 시스템'을 제안했다.

탄소 제거 비용 '부채'로 기록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 2007년 7월 3일 바르샤바에서 약 177km(110마일) 떨어진 벨차토 인근 발전소 굴뚝에 매달려 "Stop CO2"라는 슬로건을 칠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 2007년 7월 3일 바르샤바에서 약 177km(110마일) 떨어진 벨차토 인근 발전소 굴뚝에 매달려 "Stop CO2"라는 슬로건을 칠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탄소 부채 시스템은 연구팀이 금융 시장에서 영감을 받아 고안한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 제어 시스템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기업의 재정적 부채로 취급하고, 은행의 심사를 거쳐 대차대조표에 기록하자는 것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한 모든 회사는 탄소 부채를 지게 되며, 배출된 온실가스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배출량에 따라 '탄소 제거 의무(CRO)'를 지게 된다.

기업은 자신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당장 보상해서 해결할 수도 있고, 청산 시기를 미래로 미룰 수도 있다.
미래에 개발될 기술을 활용해 탄소 부채만큼을 대기 중에서 직접 흡수할 수도 있다.

대신 이 탄소 부채를 완전히 청산하기 전까지는 해당하는 이자를 계속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시간차' 배출권 거래제인 셈이다.
현행 배출권 거래제가 할당량을 놓고 기업들 사이에 거래하는 데 비해, 탄소 부채 개념은 지금 상환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에 상환할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하게 되는 것이다.

1.5도 달성 탄소 예산 10년 내 소진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테일러스빌 인근에서 소방관이 산불 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테일러스빌 인근에서 소방관이 산불 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연구팀이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게 된 것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기까지 전 세계에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승인한 제6차 평가보고서(AR6)의 제1 실무그룹(과학적 기반) 보고서에서 IPCC는 ‘탄소 예산(carbon budget) 개념으로 인류가 앞으로 배출 가능한 온실가스양을 제시하고, 그에 맞출 것을 주문했다.

인류는 1850~2019년에 2390 기가톤(Gt, 10억t)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했고, 향후 500기가톤을 더 배출하면 1.5도 목표 달성 가능성은 50%이고, 배출량을 300기가톤으로 줄일 경우에는 1.5도 목표 달성 가능성이 83%이라는 것이다.

네이처 논문의 연구진들은 이 300기가톤의 '탄소 예산'이 10년 이내에 소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기업들에 탄소 제거 의무를 지우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 각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 제거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게 연구팀의 시각이다.

연구팀은 현재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 시스템에서는 온실가스 제거 책임이 미래로 미뤄지게 되고,  21세기 중반 이후 온실가스를 제거해야 하는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식 채택되면 국내에도 영향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위원회(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위원회(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연구팀은 "온실가스 배출자인 기업이 탄소 가격을 통해 미래의 순 온실가스 제거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오염자 부담 원칙과 양립할 수 있고, 세대 간 형평성에 대한 우려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시간차 배출권 거래제가 성공하려면 ▶탄소 예산에 대한 정확한 산정이 이뤄져야 하고 ▶배출권에 대한 일관성 있는 할당이 유지돼야 하고 ▶배출자들이 뒤로 미루기만 하고 상환을 피하는 도덕적 해이가 없어야 한다.

한편, 이런 새 시스템이 아직 아이디어 수준이지만, 최근 IPCC 보고서에서 지적한 기후위기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유럽 등 선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이를 채택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유럽연합(EU)이나 다른 선진국의 탄소 국경 조정세 등과 연계될 것이고, 국내 기업도 영향을 받게 되는 만큼 새 시스템의 논의 동향에도 주목할 필요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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