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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우클릭에 중원 경쟁 필요 없어졌나…진영에 갇힌 이재명

중앙일보

입력

#.1 이재명 경기지사는 6일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재갈법(언론에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 부여)에 대해 “너무 제재 강도가 약하다”고 말했다. 야권ㆍ학계ㆍ언론계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졸속 법안”이라며 반대하지만, 그는 지난달부터 틈만 나면 “언론사가 망할 정도로 강력한 징벌을 해야 한다”고 말해오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경기지사. 국회사진기자단

#.2 전날 저녁 이 지사 공식 유튜브에선 캠프 미디어본부장으로 최근 합류한 이재정 의원이 친조국(전 법무장관) 성향의 장용진ㆍ김현태 기자와 함께 라이브 방송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의원은 “민주당은 검찰 개혁만 못 했다”며 “이 지사를 선택한 건 이것(검찰개혁 의지)도 컸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이재명 경기지사(가운데)의 열린캠프 참여를 선언한 이재정(왼쪽), 박주민(오른쪽)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29일 이재명 경기지사(가운데)의 열린캠프 참여를 선언한 이재정(왼쪽), 박주민(오른쪽)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3 지난달 29일 이재명 캠프는 새 인선을 단행했다. 캠프 구성 초창기(6월 말)엔 계파색이 옅은 중진 조정식 의원(5선)에게 맡겼던 캠프 총괄본부장 자리를 쪼개, 검찰개혁 강경파 박주민 의원(재선)에게 공동 직함을 줬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최근 행보들이다. 지난달 출마 선언(1일) 당시 성장론을 내세우며 중도 표심 잡기에 나섰던 것과 비교하면,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21대 국회 후반기(내년 6월)부터 국민의힘이 맡기로 한 여야 지도부 합의에 대해서도 “당에 재고를 간곡히 요청한다”(26일 페이스북)고 주장했다. 이 역시 강성 당원들의 주장과 똑같다.

지난달 1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온라인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지난달 1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온라인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산토끼 잡으려던 이재명, 집토끼 사수로 전환 왜?

그렇다면, 이 지사는 왜 이런 전략으로 선회했을까.

①윤석열의 우클릭=외부적 요인으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우클릭으로 인한 중원 공백이 꼽힌다. 윤 전 총장은 보수ㆍ진보 정부 모두에서 탄압받은 이미지가 있고, 정치 선언 초창기엔 ‘중도 외연 확장’을 이유로 국민의힘 입당에도 거리를 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은평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은평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하지만 최근 몇 주 사이 윤 전 총장의 입은 ‘주 120시간’, ‘민란’, ‘부정식품’, ‘건강한 페미니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은 없었다’ 등의 숱한 설화를 낳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저희 중에서도 ‘오른쪽’으로 간다”(지난달 21일)고 말할 정도다. 윤 전 총장이 보수 성향을 드러내고 예상보다 일찍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이 지사에겐 윤 전 총장과 벌일 ‘중원 싸움’의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예전엔 윤 전 총장의 중도 확장 의지가 보였고, 민주당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보니, 민주당 주자들 입장에서도 일단 경선부터 치르고 중원 경쟁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는 판단이 선 것 같다”고 말했다.

②양강 혼전=민주당 내 경선 구도도 달라졌다. 예비경선 전만 해도 ‘어대명’(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이란 평가가 있었고, 이에 이재명 캠프 역시 '원팀'을 통한 본선 승리에 집중하자는 전략을 썼다.

하지만 이낙연 전 대표가 추격전을 펴면서 경선 승리를 위한 선명성 경쟁이 중요해졌다. 이 지사도 “상황에 따라 전략은 바뀔 수밖에 없다”(지난달 13일 언론 인터뷰)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4일 서울 마포구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YTN 주최 TV토론에서 이낙연 후보를 지나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4일 서울 마포구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YTN 주최 TV토론에서 이낙연 후보를 지나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적통 논쟁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논쟁이 벌어졌다. 정동영계로 정치에 입문한 이 지사, 노무현 정부와 한때 각을 세웠던 이 전 대표의 과거사를 두고 공격이 오가면서, 서로 “내가 진짜 민주당원”이란 주장을 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두 분 다 과거에 켕긴 게 있으니깐, 외려 더 민주당원에 어필하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③文 지지율 40%=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꾸준히 40% 안팎을 기록하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6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3~5일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41%였다. 이는 지난 대선 문 대통령의 득표율과 똑같은 수치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 지사로서도 문 대통령 지지층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한국갤럽이 6일 발표한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갤럽 홈페이지 캡처

한국갤럽이 6일 발표한 대통령 직무수행평가. 갤럽 홈페이지 캡처

다만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층만 바라보는 전략은 본선 리스크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다자 구도였던 19대 대선과 달리 이번 대선은 양강 구도가 유력해서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양강 구도에서의 본선 승리는 결국 중도층을 누가 잡느냐에 달려있다”며 “당장 경선에 이기겠다고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만 듣는다면, 과다대표된 극단 지지층이 다시 정치인을 좌지우지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상민 “지사직 사퇴해야”…이재명 “선택하라면 경선 포기”

한편 이날 ‘지사직 사퇴론’과 관련해 이 지사는 “도지사직은 도민이 맡긴 책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불리하다거나 선거 운동을 많이 하겠다고 사퇴하는 게 말이 되겠냐”고 말했다. 이 지사는 “만약 저에게 ‘대선 경선 완주’와 ‘도지사 유지’ 둘 중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도지사직을 사수하겠다”라고도 했다.

이는 전날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이 “이재명 후보가 (지사직에서) 사퇴했으면 좋겠다”(라디오 인터뷰)고 말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현재 여야 대선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현직 광역단체장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 지사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불공정 경선 여지가 있다”(이낙연 캠프 윤영찬 정무실장)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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