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계질서 재편 「서곡」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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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역사학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90년대 국제정세를 결정할 두 가지 사건으로 소련제국의 붕괴와 독일의 재통일을 꼽고 있다. 이중 특히 독일 재통일은 20세기 최대의 숙제로 이 문제가 해결됐을 때 유럽의 기존질서는 물론 세계질서 재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쟁당사자이자 패전국인 독일은 전후 신질서인 냉전구조에 편입, 국토가 둘로 분단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조국이 분단된 그 순간부터 독일의 통일을 위한 기나긴 싸움에 들어갔다. 독일을 다시 하나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모든 분야에서 범 민족적으로 이뤄졌으나 특히 정치지도자들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독일인의 민족적 동질성 유지와 대립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전후 서독의 첫 정부인 아데나워 정권은 대 서방협력과 반공을 외교의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소위 할슈타인원칙을 기본으로 소련을 제외하곤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와는 국교를 맺지 않음으로써 동·서독은 적대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69년 사민당의 브란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종래의 경직된 외교를 버리고 새로운 외교를 전개했다. 오스트폴리티크(동방정책)로 눌린 브란트 외교는『독일의 재통일은 우선 동·서독 인들이 서로 갈라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원칙 하에 유럽의 동서분할 현실을 직시, 현 국경의 불가침, 2개의 독일인정등 외교적으로 획기적 방향전환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70년 서독은 소련·폴란드와 연달아 조약을 맺고 브란트 총리가 동독의 슈토프 총리와 만남으로써 양 독 관계에 있어 역사적 신기원을 이룩했다.
이어 71년 베를린 통과 협정, 72년 동·서독 기본 조약체결, 81년 슈미트 서독총리가 동독을 방문했으며, 드디어 87년 동독의 호네커 당 서기장이 동독 국가원수로선 최초로 서독을 방문, 양독 관계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그후 양독 간엔 우호적 분위기가 지속돼오고 있지만 독일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소위「1국가 2체제」(서독) 와 「1민족 2국가」(동독)의 대립이 그것이다.
지난 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통해 양독은 별개의 국가가 되었지만 서독은 49년 제정된 힌법 속에 아직도 독일통일을 명문화시켜놓고 있다.
이에 반해 동독은 지난 72년 헌법 개정 때 헌법에서 독일통일에 관한 조항을 삭제, 동·서독은 서로 엄연히 다른 국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독을 불문, 독일인들은 독일의 재통일을 하나의 당위로 여기고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서독인의 79%, 동독인의 71%가 독일은 다시 하나가 돼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동독정부의 국외여행 자유화조치 발표가 있은 직후 콜 서독총리는 크렌츠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앞으로 수주 내에 자신이 동독을 방문, 5번째 양독 정상회담을 갖도록 하자는 데 합의했다.
빠르면 이 달 안으로 있을 이번 회담에서 논의될 사항에 대해 두 사람의 입장은 서로 다르다. 콜 총리는 동독정부의 여행자유화 조치 만으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보다 실질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동독정부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 총선을 실시할 것과 시장경제를 도입, 침체된 경제를 개선함으로써 동독 인들이 더 이상 서독으로 탈출하지 않도록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 이를 위해 서독은 그에 필요한 「충분한 만큼」의 경제원조를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회담에선 독일민족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라고 콜 총리는 말했다.
이에 대해 크렌츠 서기장은 다른 문제는 몰라도 통일 문제만은 논의 될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는 이번의 국경개방조치가 국경 철폐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양 독간 협력의 필요성만을 강조했다.
크렌츠가 이처럼 강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그 동안 통일반대가 동독의 기본입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으로선 하나의 큰 도박이었던 국경 개방조치가 별 다른 무리 없이 진행되는데서 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차이에도 불구, 이번 회담이 열리는 주변상황이 상황인 만큼 난민문제를 비롯한 독일통일에 관한 논의가 양독 정상간에 폭넓게 논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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