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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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독일은 되는데 한국은 왜 안 되는가. 요즘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민족』(서베를린 시장 발터 몸퍼의 말)을 보며 부럽다 못해 비감한 생각까지 하게된다. 우리는 왜 독일처럼 될 수 없는가. 무엇이 오늘의 독일을 가능하게 했는가.
첫째, 동독은 공산국가이지만 독일이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동독사람들은 편안히 자기 집에 앉아서 서독의 TV방영을 마음대로 볼 수 있었다. 동베를린 시민의 경우 80%가 서베를린 TV를 보고 있다. 이번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수만, 수십만 군중의 데모광경을 동독의 관영TV는 생생하게 현장중계를 했다. 데모군중을 붙잡고 인터뷰도 했다. 물론 서독시민들도 동독의 TV를 볼 수 있다. 동서독이 서로 전화를 마음대로 걸 수 있게 된 것도 벌써 10년 전부터의 일이었다.
동서독은 서로 괴뢰가 어떻고, 도당이 어떻고 하는 몹쓸 욕하기 시합은 하지 않았다.
둘째는 지도자의 결단과 선견력이다. 동독의 에곤 그렌츠 공산당서기장은 그 생긴 모습처럼 수수한 실용주의노선을 선택했다. 그는 전임자 호네커 식의 냉혈통치로는 더 이상 동독을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저 없이 정치 노선을 바꾸었다. 모험이지만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정치인에겐 이런 용기와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어느새 그의 정치적 모험은 성공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밀물처럼 동독을 빠져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자기고향 동독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의 정치기술이 적중했다는 뜻이다.
셋째는 역시 서독의 경제적 우위가 오늘 베를린의 장벽을 허무는 잠재적인 힘이 되었다. 서독은 아무 두려움 없이 동독사람들에게 영토를 개방했다. 그래도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믿은 때문이다. 잃기는커녕 오히려 동독사람들이 서독의 인력난을 덜어주었다고 환영했다. 동독난민수용소의 마당엔 이들 난민에게 직장을 주겠다는 광고쪽지가 도배라도 한 것처럼 붙어 있었다.
물론 현실정치의 세계가 그렇게 로맨틱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독일은 되는데 우리는 안 된다. 요즘 판문점의 남북적 회담이 하찮은 절차문제에 매달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 못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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