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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SNS서 치인 中동포, 검색하면 가장 순한말 '새X'['혐오 팬더믹' 한국을 삼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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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트북으로 글을 작성하는 모습. 중앙포토

노트북으로 글을 작성하는 모습. 중앙포토

"코로나 이후로는 혐오가 생활 속으로 내려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바깥 활동 자체가 줄면서 온라인 이용이 늘어난 게 영향이 있는 거 같아요. 의견을 내거나 논란이 전개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온라인밖에 없으니 예전보다 혐오표현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30대 여성 A씨/여혐 댓글 피해자)

포털 기사, 유튜브 영상, 트위터 글…. 온라인 세계에 입장하는 순간, 혐오는 좋든 싫든 마주하게 된다. 특별취재팀이 지난 5월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대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혐오표현을 경험한 곳(1~3순위 기준)은 인터넷 뉴스(67.9%)-온라인 커뮤니티(58.9%)-유튜브(55%) 순이었다. 모두 흔히 접하는 온라인 플랫폼들이다.

<‘혐오 팬더믹’ 한국을 삼키다> 1회 #빅데이터로 확인한 소셜 미디어 혐오

코로나19로 대면 접촉이 줄어든 언택트 시대는 '혐오의 비대면화'를 부추긴다. 익명을 무기로 한 혐오표현은 사용자들을 물들여간다. 특히 온라인 의존도가 높은 청년층과 청소년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됐다.

"평소 네이버 스포츠 뉴스를 많이 보는데 '틀딱충'(노인 비하 표현)이란 댓글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 단어를 듣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충고의 말씀을 하실 때 마음속으로 '틀딱충 또 시작이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25세 대학생, 2020년 논문「인터넷 혐오표현 대응방안에 관한 탐색적 연구」중)

혐오표현 경험은 포털,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됐다. AFP=연합뉴스

혐오표현 경험은 포털,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됐다. AFP=연합뉴스

사람들을 혐오로 끌어들이는 온라인 여론은 어떤 식으로 움직였을까. 특별취재팀은 5월부터 두 달간 빅데이터 업체 사이람에 의뢰해 ‘코시국’(코로나 시국) 페이스북ㆍ트위터ㆍ유튜브 데이터 264만4713건을 분석했다. 5개 분기점(지난해 1~3월 코로나 1차 유행, 4~5월 이태원 클럽 발 확진, 7~8월 2차 유행, 11~12월 3차 유행, 올해 2~4월 재보선 정국)을 나눠 시기별로 혐오표현 등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확인했다.

공통 키워드는 여혐-남혐, 진보-보수, 중국인-조선족(중국 동포가 공식 명칭이지만 정확한 분석 위해 많이 쓰이는 용어 선택), 전라도-대구였다. 가장 심각한 혐오 대상 위주로 8개를 선정했다. 이와 별개로 특정 시점에 맞춰 신천지, 우한, 동성애, 게이, 교회, 태극기, 박원순, 성추행 등 8개 키워드도 추가 분석했다.

진보 키워드의 일별 버즈량 변화 추이. 특정 이벤트나 발언, 사건을 계기로 데이터가 크게 오르내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자료 중앙일보ㆍ사이람

진보 키워드의 일별 버즈량 변화 추이. 특정 이벤트나 발언, 사건을 계기로 데이터가 크게 오르내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자료 중앙일보ㆍ사이람

대구 키워드로 빅데이터 분석을 했을 때 나타난 '워드 클라우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1차 유행의 여파로 지난해 내내 다른 단어보다 크게 나타난 걸 볼 수 있다. 자료 중앙일보ㆍ사이람

대구 키워드로 빅데이터 분석을 했을 때 나타난 '워드 클라우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1차 유행의 여파로 지난해 내내 다른 단어보다 크게 나타난 걸 볼 수 있다. 자료 중앙일보ㆍ사이람

소셜 미디어의 혐오표현은 생물처럼 활발히 움직였다. 빅데이터 그래프는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출렁였다. 빠르게 불붙었다 가라앉는 온라인 여론 지형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만큼 혐오의 폭발력과 휘발성도 컸다. 특히 게임ㆍ만화 등 대중문화에서 터져 나오는 사건들이 주된 변수로 작용했다.

여혐 버즈량(소셜 미디어에 게시된 글 수)은 지난해 8월 유튜브에서 전월 대비 크게 뛰어올랐다. 기안84의 웹툰 ‘복학왕’ 여혐 논란 때문이었다. 남혐 버즈량은 ‘허버허버’ 표현 논란(올 2~4월)으로 급증했다. 일부 연예인과 유튜버가 ‘허버허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게 발단이었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남성 비하 단어라고 주장하면서 누리꾼이 적극 반응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코로나19도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교회' 키워드는 지난해 7~8월 코로나 2차 유행 전후로 연관 단어 뉘앙스가 급변했다. 정부의 대면 예배 제한에 대한 비판에서 광복절 집회로 인한 확진자 급증 우려, 집회 주최 측에 대한 비난 등으로 옮아간 것이다.

중국 동포는 정치·사회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강제 소환됐다. 혐오의 기저에 '중국=중국 동포'라는 인식이 깔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셈이다. 이는 '조선족' 키워드의 연결 중심성 상위 단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연결 중심성은 소셜 미디어에서 특정 키워드(예를 들면 ‘조선족’)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글 중에서 여러 단어와 가장 많이 연결된 단어를 뜻한다. 연결 중심성이 높다는 말은 그만큼 해당 주제로 큰 관심을 받고, 많이 언급됐다는 의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코로나 1차 유행 전후(지난해 1~3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5위, 댓글이 10위, 조작이 14위였다. 당시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차이나 게이트' 음모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조선족ㆍ중국인 등을 동원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집권을 도왔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4~5월(이태원 클럽 발 확진)에는 21대 총선 부정선거 논란이 영향을 미쳤다. 연결 중심성 공동 10위로 부정선거와 선거가 나온 게 대표적이다. 11~12월(코로나 3차 유행) 들어선 문화(7위), 한복(12위), 조선(13위)이 조선족 연관 단어로 급부상했다. 당시 중국 게임사가 출시한 게임 '샤이닝니키'를 둘러싼 한복 왜곡 논란 때문이다. 재보선 정국이던 올 2~4월에는 역사(10위), 중공(11위) 등의 키워드가 떠올랐다.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연계된 것으로 풀이된다.

'입진보' 혐오표현 관련 네트워크 지도.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좌파 등이 연관성 높은 주변 단어로 나타나고 있다. 자료 중앙일보ㆍ사이람

'입진보' 혐오표현 관련 네트워크 지도.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좌파 등이 연관성 높은 주변 단어로 나타나고 있다. 자료 중앙일보ㆍ사이람

'꼴통 보수' 혐오표현 관련 네트워크 지도. 미래통합당, 수구 등이 연관성 높은 주변 단어로 나타나고 있다. 자료 중앙일보ㆍ사이람

'꼴통 보수' 혐오표현 관련 네트워크 지도. 미래통합당, 수구 등이 연관성 높은 주변 단어로 나타나고 있다. 자료 중앙일보ㆍ사이람

갈수록 벌어지는 진보·보수의 간극도 그대로 드러났다. 진보는 보수를 가리켜 '꼴통 보수'와 '토착 왜구'로, 보수는 진보를 향해 '입진보'와 '빨갱이'라고 비하했다. 진보 키워드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의 인물이 자주 언급됐다. 보수 혐오표현에선 총선 패배, 태극기 집회 등과 연관한 날 선 비난이 자주 나왔다.

다만 이념적 갈등에선 예전과 달라진 경향도 일부 나타났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가 4년 전 혐오표현을 연구했을 때와 가장 크게 차이 나는 점이 지역이다. 진보·보수의 주요 혐오 표현을 보면 특정 인물이나 정당 이름은 있는데 전라도, 경상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풍선효과처럼 다른 분야로 혐오가 옮겨갔을 수도, 아니면 정치에서 지역색이 옅어지거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긍정적 신호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혐오 팬더믹’ 한국을 삼키다> 1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요 키워드별 혐오표현 상당수는 옮겨 적을 수 없는 수준의 비속어나 욕으로 도배됐다. 그나마 수위가 낮은 표현이 '새X'다. 젠더, 정치, 지역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최상위권에 위치했다.

이를 제외하면 여혐·남혐으로 검색했을 때 한녀, 한남으로 비하하는 표현이 많이 등장했다. 중국인·조선족에선 우한폐렴과 짱깨, 전라도·대구는 라도와 홍어, 대구 코로나와 고담 대구 같은 표현이 흔히 나타났다. 데이터로 드러난 한국 혐오의 현실이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은 우울(블루)과 분노(레드)를 동시에 가져왔다. 특히 두드러진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이어진다. 국내서도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 정서가 난무한다. 여혐ㆍ남혐 논란, 중국동포(조선족)와 성소수자 비난 등이 대표적이다.
'성별, 장애, 출신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멸시ㆍ모욕ㆍ위협을 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혐오표현의 정의(2019년 인권위 보고서 참조)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때론 내 이웃을 향하고, 종종 나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팬더믹 1년 반,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우리 안의 혐오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살펴봤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이 맞는지도 '팩트체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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