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마음을 집단 감염시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18 16:00

업데이트 2021.07.19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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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은 우울(블루)과 분노(레드)를 동시에 가져왔다. 특히 두드러진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이어진다. 국내서도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 정서가 난무한다. 여혐ㆍ남혐 논란, 중국동포(조선족)와 성소수자 비난 등이 대표적이다.

'성별, 장애, 출신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멸시ㆍ모욕ㆍ위협을 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혐오표현의 정의(2019년 인권위 보고서 참조)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때론 내 이웃을 향하고, 종종 나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팬더믹 1년 반,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우리 안의 혐오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살펴봤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이 맞는지도 '팩트체킹'했다.

혐오표현이 갈수록 늘면서 소셜 미디어를 넘어 오프라인으로 퍼지고 있다. 중앙포토

혐오표현이 갈수록 늘면서 소셜 미디어를 넘어 오프라인으로 퍼지고 있다. 중앙포토

대학생 홍모(24)씨는 지난해 2월 생애 처음으로 혐오표현을 썼다. 발단은 우연히 마주친 코로나19 관련 온라인 기사 댓글이었다. 주된 내용은 '대구 성지는 신천지 교회, 토착 왜구 고향답다…'.

<‘혐오 팬더믹’ 한국을 삼키다> 1회
국민 1000명에 '혐오 인식' 물어보니

이 댓글을 보자 가슴에서 욱하는 게 올라왔다. 그는 경남 출신이지만 대구에 친척이 살아서 자주 방문했었다. 코로나 1차 유행으로 대구가 유난히 힘겨웠던 시기, 조롱에 화가 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전라도는 뒤통수 잘 치는 사람…'. 원 작성자 출신지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 또 다른 혐오를 만들어낸 것이다.

홍씨는 "'나도 똑같은 사람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뒤늦게 글을 지웠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라는 핑계로 누군갈 비난하려는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 주변에서 혐오표현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경상도 출신엔 '친일파 자손 아니냐' 식으로 말하고, 전라도 출신엔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A씨(23)는 학교 커뮤니티에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비판 의견이 나와도 감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글을 올린 직후부터 예상을 뛰어넘은 악플이 쏟아졌다고 한다. 상당수는 '트랜스젠더까지 챙겨야 하냐'는 비난이었다. "트젠은 남자 XX하려고 성별 바꾸는 거 아니냐"는 식의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도 많았다. 그는 "익명에 기댄 혐오표현의 위력을 체감했다"고 토로했다.

"혐오를 직접 겪으니 위축되는 게 사실이죠. 이번 일 뒤로는 민감한 글을 올리기 조심스러워요. 코로나가 불씨를 지핀 혐오는 갈수록 늘어나는 거 같아요. 코로나가 끝나지 않는 이상 계속 타들어 가지 않을까…."

악플로 대표되는 혐오표현은 많은 직간접적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악플로 대표되는 혐오표현은 많은 직간접적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홍씨와 A씨뿐일까. '코시국'(코로나 시국)을 틈타 혐오가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혐오 정서는 거대한 스펀지 같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 모든 이슈는 혐오로 귀결된다. 이를테면 코로나가 그랬다.'(박민영 작가 책『지금, 또 혐오하셨네요』중)

위험 수준에 다다른 코로나발(發) 혐오는 수치로 드러났다. 국민 3명 중 1명은 코로나19와 관련해 혐오 표현을 한 번 이상 써본 것으로 나타났다. 4명 중 3명은 코로나로 인해 이전보다 혐오표현이 늘었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이 지난 5월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의 혐오 인식을 조사한 결과다.

특별취재팀은 조사 대상자들에 2019년 인권위가 실시한 '혐오차별 국민 인식 조사'와 똑같은 문항을 물어봤다. 지난 2년 새 코로나가 혐오에 미친 영향을 비교해보기 위해서다. 최근 1년간 혐오표현 경험한 적 있다는 비율은 68.2%로 2년 전(64.2%)보다 4%포인트 올랐다. 피부로 접하는 혐오의 체감도가 올라간 것이다.

지난달 30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야구장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를 찾은 어린이가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0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야구장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를 찾은 어린이가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이들이 자주 경험한 혐오 표현(상위 3개 기준)도 크게 달라졌다. 2019년 조사에선 특정 지역 출신(74.6%)-페미니스트(69.4%)-여성(68.7%) 순으로 많았다. 하지만 올해 조사에선 특정 종교집단(83.3%)-특정 정치성향(79.9%)-중국/중국 동포(76.8%)로 나타났다. 코로나 유행이 처음 시작된 중국, 국내 집단감염 진원지로 꼽힌 신천지 교회와 광복절 집회 등에 대한 비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조국 사태와 부동산 정책, 광역단체장의 잇따른 성추문 등으로 갈등이 증폭된 이념 지형도 악화한 모양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사회가 위기에 빠지면 혐오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감염병인 코로나도 그런 경향과 관련성이 클 것으로 본다"면서 "혐오 대상은 딱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개는 원래 혐오 받던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증폭되는 효과가 크다. 예를 들어 중국, 중국 동포, 신천지 등 내가 평소 싫어하던 집단에서 감염이 일어난다면 그에 대한 혐오를 집단화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혐오표현을 쓰는 이유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2019년 조사에선 표현의 자유라고 응답한 비율(중복 답변 허용)이 61.6%, 내용에 동의하기 때문이 50%였다. 하지만 올해는 내용에 동의하기 때문이란 응답자가 3명 중 2명에 달했다. 반면 표현의 자유는 52.5%로 내려갔다. 단순한 재미 차원을 넘어서 내용에 동조하는 사용자가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별취재팀은 코로나19 상황을 반영한 질문들도 던졌다. 코로나로 이전보다 혐오표현 사용이 증가했다는 데는 76.4%가 동의했다. 23.6%만 그렇지 않다고 봤다. 증가한 이유(1~3순위 기준)로는 ‘온라인에서 혐오ㆍ차별을 조장하는 표현과 주장 확산’(54.1%)이 가장 많이 꼽혔다. 가짜뉴스 같은 출처 불분명한 극단적 주장이 만연하면서 혐오 분위기가 퍼졌다는 데 국민 다수가 공감한 것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본인이 직접 코로나 관련 혐오표현을 써본 적 있다는 비율은 35.8%에 달했다. 혐오표현을 사용한 플랫폼(1~3순위 기준)은 사적 모임 54.5%, 메신저 채팅방 28.5%, 직장ㆍ학교 26.5% 순이었다. 소셜 미디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넘어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혐오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익명의 공간을 벗어나 실명으로 혐오에 나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혐오표현을 사용한 대상(1~3순위 기준)은 특정 종교집단이 71%로 가장 많았다. 중국ㆍ중국 동포가 43.2%, 특정 정치성향이 42.3%로 뒤를 이었다. 세 집단과 나머지 대상 간의 격차는 큰 편이었다.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의 그늘이 갈수록 짙어질 거라는 비관적 전망에 힘이 실렸다. 2019년엔 혐오표현이 범죄로 이어질 듯하다는 응답자가 81.8%, 사회 갈등이 심해질 거 같다는 비율은 78.4%였다. 반면 올해는 범죄로 이어질 거라는 전망에 84.5%가 동의했고, 사회갈등이 심해질 거라는 비율도 83.9%로 나타났다. 혐오의 미래에 부정적 의견이 소폭 상승한 것이다.

<‘혐오 팬더믹’ 한국을 삼키다> 1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권민오 엠브레인퍼블릭 부장은 "혐오 차별이 사회 갈등과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중이 모두 80%를 넘어섰다. 혐오표현 규제와 교육, 언론의 혐오 조장 보도 자제 등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매우 높은 수준으로 나왔다"면서 "정부의 종합적 대책 마련과 언론의 자정 노력 등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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