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돈 대주고 20억 리베이트 받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국민의 세금 등으로 조성된 기금을 굴리면서 투자 대가로 뒷돈을 챙긴 창업투자회사 대표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6일 2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창출 펀드'를 운용하면서 중소기업에 돈을 지원해 주는 대가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업무상 배임)로 K창투사 대표 C씨(57)와 상무 K씨(43), 컨설팅업체 R사 대표 H씨(44) 등 세 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C씨와 K씨는 펀드자금 140억원을 10여 개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자금 지원 대가로 20억여원의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혐의다. 경찰은 또 K사로부터 받은 자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T사 대표 S씨(45) 등 20여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창투사 업계 등에 따르면 K사는 2004년 10월 중소기업청이 조성하고, 경상남도 등 12개 기관이 투자한 일자리창출펀드 운용사로 선정됐다. 중소기업청은 2000명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고용을 대폭 늘릴 수 있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업종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K사는 C씨와 친분이 있거나 리베이트를 준 기업에 돈을 지원했다.

7억원을 지원 받은 T사는 당시 창업한 지 2개월도 되지 않았으나 이 회사 대표가 K사의 주요 주주라는 이유로 자금유치에 성공했다. D사에는 15억원을 지원해 주고 3억원을 리베이트로 받았고, V사는 10억원을 투자받는 조건으로 1억원을 C씨에게 건넸다.

서울경찰청 고위관계자는 "돈 받은 기업 상당수가 외제 승용차를 사거나 주식 투자 등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일자리창출펀드의 감독기관인 중소기업청은 경찰 수사가 시작된 올 초 뒤늦게 K사의 자금운용을 중단시켰다. 펀드 운용규약에는 사적인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으나 중기청은 1년 넘도록 감독의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눈먼 돈처럼 운용되는 펀드 시스템의 허점도 한몫 했다. 일자리 창출 목표에만 매달리다 보니 자금손실이 나더라도 절차상 문제가 없다면 펀드 운용사나 투자 기업 등에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했다. K사가 거액의 리베이트를 공공연하게 챙길 수 있었던 이유다.

중기청 관계자는 "펀드자금의 상당액을 이미 회수했으며 손실이 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손해용.임장혁.권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