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월요인터뷰

김종민 한국관광공사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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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름 휴가철을 맞아 요즘 인천공항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달 중순엔 개항 이래 처음으로 하루 이용객이 10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해외로 나간 내국인은 1007만 명.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602만 명)보다 400만여 명이 많았다. 이로 인해 지난해 관광수지는 62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해마다 적자 폭이 커지는 관광수지는 올 상반기 우리나라 경상수지 적자의 주범이기도 하다. 김종민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만나 우리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을지로 공사 사장실에서 했다.

-지난달 집중호우 피해를 본 강원도 관광업계가 울상입니다.

"강원도 지역경제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지요. 그래서 '3-1-2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사흘 휴가를 보내면서 하루는 봉사활동을 하고, 이틀은 부담 없이 즐기자는 것입니다."

-관광공사의 역할에 대해 모르는 국민이 많습니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택시기사에게 '관광공사로 가자'고 하니까 관광나이트 클럽에 데려다 줬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간 '개념 투쟁'에 매달렸습니다. 관광이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산업이란 인식을 심어주려는 노력이었죠. 관광을 산업으로 봐야 과학적인 통계에 뿌리를 둔 육성 전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광 공학(Tourism Technology.TT)'이란 말을 만들었습니다. TT를 IT(정보기술)나 BT(생명공학) 같이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공사 조직을 개편하면서 '관광테크놀로지' 본부를 별도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죠."

-세계가 관광산업 진흥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한국도 전열을 정비할 때가 아닌가요.

"세계여행관광협의회(WTTC)에 따르면 2003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중 관광산업 비중은 12%에 이릅니다. 2008년에는 20%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GDP 비중은 2004년 기준으로 4% 정도에 불과합니다. 일본이 9%, 중국이 10% 정도인 것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지요. 세계 경제대국은 하나같이 관광 강국입니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 진입을 앞두고 있지만 관광산업에서는 아직 후진국입니다. 그래서 관광공사부터 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제조업 고용이 한계에 이르러 서비스업 육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관광산업 종사자는 매년 늘고 있어요. 현재 313만 명으로 농.어업 인구(200만 명)를 이미 넘어섰습니다. 관광산업은 고용 효과가 큽니다. 매출 10억원당 유발되는 일자리 수가 관광산업은 52명으로 일반 제조업의 두 배, IT산업의 다섯 배에 이릅니다. '사오정'(45세가 정년이라는 뜻)의 직장 경험을 흡수할 곳도 관광이에요. 3개월만 직무교육을 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까 개념투쟁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죠. 올해 처음으로 초.중.고 보조 교육자료에 '관광산업의 이해'라는 내용을 넣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관광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또 조기에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게 언젠가는 관광산업에 큰 힘이 될 겁니다."

-관광산업도 품질이 좋아야 경쟁력이 있는 것 아닙니까.

"지난해 한류상품을 개발해 12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을 유치했습니다.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국제회의를 많이 열어야 합니다. 국제회의 참가자 대부분은 지도층 인사여서 일반 관광객보다 씀씀이가 크지요. 대략 세 배 이상 쓴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강원도 평창이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면 국내 관광산업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저도 올림픽 유치위원으로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매력적인 관광상품이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젠 유형의 관광상품보다 무형의 관광상품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매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뤘습니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치렀습니다.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하면서도 휴대전화.자동차.조선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이런 모습을 매력적으로 여깁니다. 관광은 '접미사'입니다. '생활관광' '의료관광' '비무장지대관광'처럼 개발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거죠.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제례, '대장금'에서 보여준 궁중음식, '비 보이'라고 부르는 요새 젊은이들의 춤 등도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죠."

-해외에서 현지 TV를 보면 우리나라 관광을 홍보하는 화면이 보이질 않아요.

"사실 우리는 해외 주요 방송에 광고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없어요. 경쟁국들은 연간 1000억원씩 방송광고에 쓰지만, 우리 공사의 해외 광고 예산은 80억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최근 뉴욕 한복판에 좋은 광고자리가 생겼으나 돈이 없어 포기했습니다. 국가 경제력에 비해 관광 마케팅에 쏟는 힘은 부족합니다. 기업들과 손잡고 관광홍보를 해보려 했는데 삼성 등 기업 브랜드가 국가 브랜드보다 인지도가 워낙 높다 보니 기업에서 주저하더군요. 그래서 현 국가 브랜드 '다이내믹 코리아'와 차별화된 새 관광 브랜드를 개발 중입니다."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결국 돈이 문제군요.

"지금 시중에 떠도는 부동자금이 400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중 1%만 관광산업에 유입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겁니다. 관광산업은 초기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업종이에요. 호텔방 하나 건축하는 데 5억원이 듭니다. 국내 숙박시설 신축이나 관광단지 개발 등에 필요한 자금을 대주는 '관광산업펀드'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과감한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을 통해 기업들이 나서도록 유도해야죠. 왜 주상복합개발만 합니까. 호텔과 아파트를 한 건물에 짓는 방식은 안 되나요. 우리가 주장해 관광사업도 이제는 무역업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만 아직 미진한 점이 많습니다."

-제주도가 특별자치행정구역으로 선정됐습니다. 관광산업 발전에 기회가 될까요.

"제주도의 자연 인프라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눈과 유채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나요. 그러나 카지노나 호텔.골프장만 자꾸 짓겠다고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컨셉트'를 잡아야지요. 제주도를 '불로(不老)의 섬'으로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 노화방지연구소 같은 것을 세우면 전 세계에서 환자와 부유한 사람들이 몰릴 것입니다. 또 해양생태계 연구소를 만들면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세계적 미디어들의 관심을 끌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지역경제도 살아날 겁니다."

-사장 취임 후 공사를 확 바꿔 놓았다고 들었습니다.

"일부에서는 한국관광공사를 '국립 부실여행사'라고 하더군요. 부끄러웠습니다. 무기력하고 패배주의에 빠진 조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극약 처방을 했습니다.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6개 본부장 중 세 자리를 공모로 뽑았습니다. '3R'(리폼.리뉴얼.리노베이션)운동을 하고 회사얼굴(CI)도 바꿨습니다. 직원들에게 어릴 때 봤던 '동동구리무 장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손님을 끌어 모아 물건을 팔던 멀티플레이어였잖아요."

만난 사람 = 고윤희 경제부문 부장대우
정리=이현상 기자<leehs@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 김종민 사장은

김종민 사장은 공무원 출신이지만 굵직한 국제 행사를 치러본 경험이 많다. 총무처 과장 시절인 1986~89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 파견돼 근무했고, 99~2001년엔 세계 도자기 엑스포 조직위원장으로 일했다. 도자기 엑스포 때는 세계 문화 행사 사상 최대인 606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계기로 관광산업의 중요성에 눈 뜬 그는 2002년 초대 경기관광공사 사장을 맡았다. 사장 취임 후 그는 국내 관광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공사 조직을 전면 개편했다. 관광공사는 지난해 공공기관 210개를 대상으로 한 기획예산처의 혁신평가에서 '혁신 최우수 향상 기관'으로 뽑혔다.

▶49년 충북 영동 출생▶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학원 정책학 석사 ▶행시 11회(72년) ▶총무처 과장.국장 ▶청와대 비서관 ▶문화체육부 차관 ▶명지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