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대공원 "명소" 옛말…존폐기로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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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내년으로 개원 17년을 맞는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이 낡고 노후된 시설로 어린이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어린이 전용공원으로서의 생명마저 잃게될 기로에 섰다.
73년 개원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와 시설로 전국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명소가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해 초라한 「동네공원」으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공원관리를 위탁받은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공원형태를 아예 「시민공원」으로 전환할 계획까지 검토하고 있어 대규모 투자를 유치, 현대시설을 갖추지 않는 한 「대공원」은 곧 옛 영화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어린이 외면=최근 서울랜드·잠실롯데월드 등 최신 유락시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대공원을 찾는 어린이는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들고 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인원 3백만명에 이르던 어린이 입장객이 86년에 1백80만명, 87년에 1백60만명, 88년에 92만명으로 떨어지더니 올해 10월까지 70만명을 밑돌고 있다.
이와 함께 청·장년을 포함한 올 전체 입장객 수도 불과 2년 전의 절반인 1백50만명 수준에 머물고 있고, 전속사진사도 3년전 40여명이던 것이 지금은 10분의1 수준인 4명뿐.
공원 후문 옆에서 10년째 노점상을 해온 이종욱씨(50)는 『소풍철에 관계없이 어린이 손님으로 들끓던 곳이 수년 전부터 동네노인들이나 지방에서 단체로 온 부녀자 등 어른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숫자가 크게 줄어 파장이 된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시설 노후=어린이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어야 할 「놀이동산」의 18개 시설 중 88열차 등 7개 놀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원 당시부터 운영돼 온 골동품 직전의 시설들.
83년 새롭게 설치된 60여개의 모험놀이도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끌지 못해 이용 어린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난달 가을소풍을 온 서울행당국교 3년 박모군(9)은 『며칠 전 엄마와 함께 과천서울랜드에서 마그나돔영화(대형입체영화) 등 신기한 구경을 많이 했는데 여기 시설들은 너무 시시해 소풍 때 외엔 오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놀이시설 외에도 각종 전시실과 자연학습장 등 10여개 교양시설도 안내원 없이 구경만 하게 돼있어 교육효과 없이 하루 1백여명의 이용객이 고작.
◇탈바꿈 계획=86년 서울시로부터 공원관리권을 위탁받은 공단 측은 지난달부터 「공원장기경영계획」 수립에 들어가 민자를 끌어들여 최선 유원시설을 갖추거나 시민공원으로 무료개방,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단 측은 내년 상반기 중 한양대환경대학원 등 관계전문기관에 자신들의 계획을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연구를 의뢰키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안간힘도 공원의 예산책정 등 실질적인 경영권을 가진 서울시가 『민자가 들어오면 공원이 상업성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등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있어 장기계획 실행여부는 미지수.
◇대공원=73년5월 고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정치인·기업인들이 애용하던 서울컨트리클럽을 어린이를 위한 교육공간으로 바꿀 것을 지시, 현재의 공원으로 조성됐다.
개원당시 60만명의 인파가 몰려 3백여명의 미아소동을 빚기도 했던 대공원은 동물원·수영장 등을 고루 갖춘데다 76년 박근혜씨가 운영하는 어린이회관까지 옮겨와 80년대 초까지 명실상부한 어린이 대공원의 몫을 톡톡히 해왔다.
1백20여종, 수십만 그루의 수목과 17만평방m의 광활한 잔디밭을 갖춘 총18만여평으로 현재 땅값은 1천여억원을 호가.
한양대환경대학원장 오휘영 교수는 『인공공원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대공원 활성화를 위해 관계기관이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공원활성화는 곧 환경정화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최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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