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둘러싼 궤변|김용일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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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온 국민을 경악케 한 「라면 파동」을 다룬 6일의 국회 보사위는 식품 업자들의 양식과 보사 행정의 현주소를 짐작케 하는 우울한 현장이었다.
공업용 원료를 식용에 사용한 것이 명백함에도 『식품 과학적 견해 차이』라고 업자들이 반발한 뒤여서 자연 관심의 초점은 문제된 식품의 인체 유해 여부에 쏠렸다. 그러나 양측 모두 과학적 접근을 하기보다는 각기 처한 입장에서 직관성 주장을 하기에 급급했다.
김종인 보사부장관은 『완제품을 검사해 본 결과 유해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을 뿐 그 말을 뒷받침할만한 증빙 자료를 끝내 내놓지 못했다.
더욱 우려를 떨칠 수 없었던 것은 우리 보사부가 지난 1월부터 비로소 수입된 식품 원료의 유해성 여부를 검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작년까지는 수입된 무수한 식품 원료가 상한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체크조차 안하고 방치해 왔다는 얘기가 된다.
보사 당국의 한심한 행정 감독 외에도 이날 회의에서 석준규 의원 (민주)이 보여준 태도는 기업주들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었다.
보사 위원이자 관계업자 (부산 유지 회장)이기도 한 석 의원은 『완제품만 무해하면 됐지 식용이든, 공업용이든 따질 바 아니다』며 오히려 동료 의원들의 무지 (?)를 질책하고 나섰다. 속된말로 『걸레라도 깨끗이 빨면 행주로 써도 된다』는 식이었다. 물론 이 같은 항변에 일리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완제품이 정말 먹을 만한 것이라면 그것을 입증할만한 노력을 하거나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보사부장관의 유해하지 않다는 말 한마디가 유해 여부의 척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작 이번 파동에서 간과해서 안될 것은 사건의 본질이 인체에 유해성 여부만을 따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해한 것으로 드러나면 제조업자·감독 관청은 구제 받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는 결과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공업용 원료로 식품을 만든 기업가들의 윤리 부재는 비난받기에 충분하다.
3시간여의 논란 끝에 「본격 조사를 위한 소위구성」으로 회의는 일단 끝났다. 그러나 미국의 FDA (식품의 약국)처럼 공신력 있는 판정 기관이 없는 우리의 실정에서 무책임한 업자와 당국의 틈바구니에서 결국 절망을 느끼고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뿐이라는 씁쓸함이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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