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노예처럼 학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1. 정신지체장애 2급인 우모(49)씨는 2003년 11월 집을 잃고 헤매다 이모(46)씨를 만났다. 이씨는 우씨를 1년에 300만원을 주겠다고 속인 뒤 전남의 한 섬에 있는 김 양식장으로 데려갔다. 3년 넘은 우씨의 섬생활은 노예생활과 다름없었다. 이후 그는 하루 12시간 넘게 중노동한 대가를 받기는커녕 매일 이씨로부터 일을 못한다고 얻어맞았다. 작업 도중 손가락이 잘렸는데도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일이 끝나면 골방에 갇혀야 했다. 최근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유린이 사회 문제화하자 겁이 난 이씨가 우씨를 뭍에 버리면서 노예생활이 끝났다.

#2. 정신지체장애인 박모(51)씨는 1983년부터 서해안 낙도의 농가에 살게 됐다. 이후 20년 넘게 농사를 돕는 머슴 생활을 했다. 주인은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박씨 명의로 나온 장애인 생계보조수당 1900만원도 가로챘다.

경찰청이 지난달 전국 도서 지역의 양식장.염전과 산간 지역의 농장 등지의 정신지체장애인 인권유린 실태를 점검한 결과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임금을 갈취한 24명을 적발했다고 3일 밝혔다. 이 중 강원도 정선의 개 사육장에서 정신지체장애인 박모(35)씨를 2004년부터 1년 동안 임금을 주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한 혐의로 이모(46.강원도 정선)씨 등 5명을 구속했다.

경찰 수사 결과 ▶무허가 직업소개소에서 정신지체장애인이 거래되고 ▶고용주는 이들을 임금도 안 주고 부리거나 장애인 생계보조수당 등을 착복하며 ▶불법으로 감금하고 상습적으로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적발된 지역은 낙도와 같이 외진 곳이고, 일이 고돼 일꾼을 찾기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은 오랫동안 불법 사실을 알고도 동네 사람이기 때문에 눈감고 모른 척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현대판 노예 사건' 왜 일어나나=가해자들은 정신지체장애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강하게 항의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했다. 이들이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되더라도 동사무소 직원이 현장에 나가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어 인권유린 사례가 발견되기 힘들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철재.한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