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 정호영 의원-반격 체비에 정가 어수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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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 양측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정호용 의원이 반발의 폭탄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는 등 온갖 소문이 나돌아 정가가 어수선하다.
정 의원이 지금까지 소극적 대응에서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의 동반 사퇴를 주장하는 등 적극 공세로 나오자 평민당 측도 은근히 소문의 진원을 캐는 등 긴장하는 눈치.
정 의원이 이처럼 강하게 나오는 것은 물론 대야 공격용이지만 여권 내부에 대한 불신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민정당이 공식적으로는 사법 처리 원칙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그에 대한 고립·고사 작전이 진행중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정당 지도부가 △당 주도하에 △대화를 통해 △연내에 종결 짓는다는 3원칙 아래 핵심 인사 사법 처리, 마무리 차원의 전직 대통령 증언을 외치고 있으나 내심 정 의원의 눈치를 살피며 용퇴를 고대하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정 의원이 꼭 광주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하더라도 『달리 어떤 방도가 없지 않느냐』고 실토하는 의원들이 많다.
때문에 한편으로 5공 백서 발간, 전직 대통령 석명서 발표 등에 이은 일방 종결 선언이라는 정면 돌파론을 거론하면서도 그후의 혼란을 우려, 여전히 정 의원의 결단을 기대하고 있다.
한 고위 당직자가 도상 계획이라고 고백한 탈당 후 장기 외유를 비롯, 제명·출당 등의 방법 모두가 정 의원 사퇴를 가상한 것이고 최근 군의 명예와 정 의원의 정치·도의적 책임을 분리처리 한다는 박준규 대표의 발언도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고발 후 사퇴 추진이라는 방안까지 운위되는 지경인데 정 의원에 대한 이 같은 안팎이 다른 평가와 방법론이 분분한 것은 5공 청산 그 자체보다는 파워 게임의 성격이 강하다는 관측도 있다.
이는 김복동씨의 신당설과 여권 내부의 후계자 구도와 관계된 TK 세력 내부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추측들이다. 단순히 광주 문제만 아닌 여권 내 세력 다툼의 성격으로 비쳐지기 때문에 정 의원 측은 더욱 사퇴 문제에 단호한 것 같다.
특히 8, 9월에 걸쳐 22개 대구·경북 지구당 정기 대회에 참석한데 이어 지난 주말 지역구인 대구에 내려가 현지 분위기를 확인한 이후부터 정 의원의 각오는 더욱 굳어진 느낌이다.
정 의원은 그에 대한 밀어내기 공세에 두 갈래로 대응책을 강구중이다.
야 3당의 광주 문제 인책 사퇴 압력에 대해서는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군인의 근본적 가치관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고 △민선 의원으로서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았으며 △법에 의하지 않고 처벌받는 나쁜 선례를 남긴다며 주로 명분론에 입각, 반론을 펴고있다.
최근 들어서는 광주에 관한 책임을 따지자면 김대중씨가 더 크다면서 동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정면으로 맞받아 치는 작전을 구사한다.
여권 내부의 은근한 압력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친구·지원자를 치려는 김대중 총재의 술수에 말려드는 것이며 △공직을 사퇴해도 정국 안정에 도움이 안되며 새로운 불씨의 시작이라는 현실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공식·비공식으로 당이 어떤 사퇴 요청을 해온 바 없고 도리어 표면상으로는 그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어 공개적인 발언은 삼가고 있다.
따라서 소속 의원 등에게 자신의 사퇴 부가 이유를 설명하는 한편 자신의 세와 단호한 의지를 과시하는 것으로 버티기 수로 끌고 가는 중이다.
정 의원은 1일 대구에서 올라온 직후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죽을지언정 항복은 않는다』면서 만일의 경우 험악한 사태가 초래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는 『내가 당하면 야당인들 무사할 것 같으냐. 그렇게 쉽지 않다』고 야당을 겨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권이 야당의 억지 논리에 굴복하면 야 3당과의 싸움 못지 않게 힘든 싸움을 나와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어차피 한판 대결이 불가피하고 야당의 의도가 뻔한데 한번 밀리다간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다는 것이다.
정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폭탄 선언에 대해 정 의원 본인은 일체 함구하고 있으나 김대중씨와 관련, 광주 항쟁 촉발 책임 소재 및 82년 도미 전후 상황에 관한 것이라는 설과 김 총재의 해외 활동, 특히 체일시의 행적에 관한 것이라는 설 및 정치 자금 수수에 얽힌 내용도 포함돼 있다는 얘기도 있다. 또 광주 사태 당시 병력 이동과 관련된 미묘한 문제라는 얘기도 있다.
일부 내용에 대해선 여권도 적지않이 곤혹스러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 의원은 처리 시한에 쫓긴 여야의 압력이 최고조에 이를 12월께 국회에서 신상 발언·기자 회견 등을 갖고 자신의 사퇴 불가 이유를 밝힌다는 것인데, 이와 함께 지역구와 군 등 자신의 지지자 모임을 갖는 등 정면 대결 부사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이 바람에 정 의원 문제가 매듭지어 지지 않은 채 극한 상황으로 몰려가 정 의원이 필사적으로 반발하고 나서면 민정당이 분열하는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 의원의 이런 완강한 태도에 당직자들은 『여당을 그렇게 보면 안 된다. 그를 따라 나갈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군에서도 딱한 표정이더라』고 평가 절하하고 있다. 정 의원의 모임은 즉각 체크되고 정 의원 주변 인물에 대한 설득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무리가 있다간 엄청난 소동이 있을 것임을 예상, 당 지도부도 더 이상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때문에 당 지도부는 정 의원 사퇴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백담사의 선 증언 등을 통한 포괄적 책임 인정 등의 방법을 모색하는 등 처리 시한이 2개월도 채 안 남았음에도 해결의 가닥도 못 잡은 상태로 엉거주춤하고 있다. <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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