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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선댄스 간 김정남 암살영화, 영진위 예술영화 거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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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10일 김정남 암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암살자들’을 예술영화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로 “독창성, 미학적 가치 부족”을 들었다. 해당 영화는 세계적 권위의 독립영화제인 미국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어서 정치권에선 “북한 눈치보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일간스포츠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일간스포츠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실이 영진위로부터 제출받은 ‘2017~2021 예술영화 불인정 사유’ 자료에 따르면 영화 ‘암살자들’은 최근 영진위로부터 예술영화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 영진위는 해당 영화에 대해 “영화적으로 작품이 독창성이 있거나 뛰어난 미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사기준 제1항 2호, 3호, 4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영진위가 언급한 예술영화 심사기준은 ▶소재, 주제, 표현방법이 기존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특색을 보이는 창의적, 실험적인 작품 ▶국내에서 거의 상영된 바 없는 개인, 집단, 사회, 국가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문화 간 지속적 교류, 생각의 자유로운 유통, 문화다양성의 확대에 기여하는 작품 ▶예술적 관점,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문화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있는 작품 등이다.

‘암살자들’은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과 인도네이사 여성 시티 아이샤가 독극물로 김정남을 살해한 사건을 재구성해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김정남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 형으로, 당시 마카오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암살자들’은 2014년 제30회 선댄스영화제에서 다른 영화로 감독상을 받은 라이언 화이트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제작사가 제작했다.

예술영화로 인정받지 못 하면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에서 상영이 어렵다. 일반 극장에서 상영은 가능하지만,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독립영화의 경우 대형 배급사와 제작사가 홍보하는 상업 영화에 밀려 상영관 확보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 달 영진위가 ‘암살자들’에 대해 예술영화 불인정을 통보하자 수입ㆍ공동 배급사 더쿱과 왓챠, 제공사 Kth는 입장문을 내고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해당 영화에 대한 예술영화 불인정 사유와 명확한 심사기준을 공개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김승수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영진위는 지난 2017년부터 6월 현재까지 총 400건의 영화에 대해 예술영화 불인정 통보를 했다. “기존 상업영화의 관습을 그대로 답습했다”거나 “시대착오적”, “소재를 다루는 방법이 매너리즘을 못 벗어났다”는 사유 등의 이유였다. 그러나 ‘암살자들’ 배급사 측은 “‘암살자들‘은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돼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으로,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작품성으로 호평을 받은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라며 심사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현 정권의 북한 눈치보기냐”는 지적도 나왔다. 김승수 의원은 “‘김일성 회고록’은 허용하면서, 선댄스영화제에도 초청된 영화 ‘암살자들’은 (예술영화가)안 된다고 한 건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문화예술까지 북한 눈치를 보며 이중잣대로 판단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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