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교육부총리 사의 … 13일간의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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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2일 교육부 직원들이 부총리실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성 기자

"노무현 정부에서 더 이상의 극적인 드라마는 없다."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6월 본지 기자와 만나 이런 말을 했다. 대선 후보와 관련된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막판에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한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그는 7월 21일 노무현 대통령한테서 임명장을 받고 제7대 교육부총리로 취임해 13일 만인 2일 사의를 표명했다. 논문의 도덕성이 문제가 됐다. 김 부총리는 도덕성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과도 하고 부인도 했다. 본인이 청문회를 요청했고, 국회 상임위에 출석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그러나 버티지 못했다. "더 이상 드라마가 없다"던 그였지만 지난 13일간은 그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였다.

◆ 논란 속 취임='왕(노 대통령)의 남자'로 불리는 김 부총리는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세금 폭탄' 발언을 하며 부동산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지난달 3일 노 대통령이 그를 교육부총리로 지명했을 때부터 반발이 거셌다.

"부동산 정책을 엉망으로 만든 사람이 어떻게 교육부총리를 하느냐"는 게 비난의 골자였다. 하지만 그는 "내가 교육부총리 적임자"라고 되받아쳤다. 인사청문회(7월 18일) 때는 두 딸의 외국어고 입학 특례 의혹과 병역 문제(중졸로 기록)도 불거져나와 곤욕을 치렀다. 김 부총리는 자신에 대한 강성 이미지를 벗으려는 듯 인사청문회에선 부드럽게 대응했다. 청문회 직후 전임 김진표 부총리가 2008학년도부터 제한하겠다고 했던 외국어고 입학제한 조치를 2010년까지 3년간 미룬다는 발표도 했다.

김 부총리는 취임 후 기자실을 찾아 "앞으로 교육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며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정책을 차근차근 내놓겠다"고 했다. 대학 구조개혁도 강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표절 논란 드라마의 시작=취임 사흘 만에 일이 터졌다. 김 부총리가 국민대 교수 재직 시절 제자 신모씨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부총리는 완강했다. "제자보다 논문을 먼저 썼는데 어떻게 나중에 쓴 논문을 표절할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제자가 자신의 논문을 원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달 25일 한국행정학회에 표절 여부에 대한 심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터졌다.

그런 와중에도 김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경기도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참석했다. "외고 입학제한을 2010년까지 연기하고 영어교육 혁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그날 밤 중대 고비를 맞았다. 두뇌한국(BK)21사업의 최종보고서를 중복으로 제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연구비 중복 수령 논란(본지 7월 29일자 1면)도 큰 타격이었다. BK사업 전에 학술진흥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아쓴 논문을 BK사업 실적으로 제출한 또 다른 '자기 표절'이 확인된 것이다.

김 부총리는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실무자의 단순한 행정적 실수"라고 사과했다. 그러나 여론은 급속히 등을 돌렸다. 다음날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와 전국교수노조 등이 "도덕성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한국교총, 전교조, 학부모단체 등의 성명이 잇따랐다.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일제히 문제를 삼고 나선 것이다. 논문 이중 게재, 연구비 중복 수령, 자기 표절 등 또 다른 의혹들도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졌다.

◆ 사퇴로 끝난 반전 시도=김 부총리는 반전을 시도했다. 일요일인 7월 30일 출근해 '사실을 밝힙니다'라는 장문의 해명서를 내고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언론을 고소하겠다고 하고, 국회에 청문회도 요청했다.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1일 열린 국회교육위에서 그는 "나는 떳떳하다""증거를 대라"며 의원들과 정면 충돌했다. 교육위가 끝난 뒤에는 "사퇴는 무슨 사퇴냐"라며 자신감도 내보였다.

그러나 2일 아침 논문 중복 규제 규정을 어긴 위증사실이 본지에 보도됐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이날 오전 그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김 부총리는 아침 일찍 노 대통령을 만나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화려한 '왕의 남자'로 시작된 드라마는 13일 만에 '만신창이 남자'로 막을 내렸다.

양영유 기자 <yangyy@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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