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비켜 비켜 다 비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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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들을 '초보'라고 불렀다. 창단 4년에 불과한 신생 팀. 난생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은 조범현 감독. 청소년 티가 엿보이는 파릇한 선수들. 그 누구도 SK가 '거함'삼성과 '철옹성'기아를 연거푸 무너뜨릴 줄은 몰랐다.

SK는 12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5전3승제) 3차전에서 기아를 10-4로 대파, 파죽의 3연승으로 한국시리즈 티켓을 따냈다. 정규 시즌에서 4강에 턱걸이한 뒤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를 거쳐 대망의 한국시리즈(7전4승제)에 올라선 SK는 오는 17일부터 페넌트 레이스 1위 팀인 현대와 '최강'을 가린다.

승부는 초반에 갈렸다. SK는 1회말 톱타자 조원우가 좌중간 2루타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2번타자 이진영은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기는 2점 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기아는 3회초 3-2로 경기를 뒤집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3회말 SK는 이진영-김기태-이호준 등 클린업 트리오의 '소나기'안타로 6-3까지 내뺐다. 또 4회말에는 이진영의 1타점 적시타와 박경완의 왼쪽 스탠드 상단에 떨어지는 3점짜리 대형 홈런으로 10-3까지 달아났다.

SK가 처음부터 '비룡'은 아니었다. 오히려 날지 못하는 '이무기'였다. 1천년에 딱 한번 온다는 그날,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날 만을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이무기였다. 조감독이 그랬다. "나야 초보감독이니 아는 게 있나"라며 늘상 연막을 피웠으나 그의 준비성은 소름이 끼칠 만큼 철저했다.

정규시즌 4위를 확정짓기 직전에 이미 기아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로 채병룡을 점찍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온갖 통계와 자료를 분석해 상대 투수와 타자들의 약점을 확률적으로 공략해 들어갔다. 여기에 '감각 야구'로 맞선 김성한 감독의 기아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금껏 시즌 4위 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것은 모두 세차례(1990년 삼성, 96년 현대, 2002년 LG)였다. 그러나 세 팀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한껏 탄력을 받은 SK가 재치로 똘똘 뭉친 '김재박 야구'를 깨뜨리고 프로야구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천=이태일.성호준.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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