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국정원, 과거 안 돌아가"…새 원훈은 국보법 위반 신영복체

중앙일보

입력 2021.06.04 19:16

업데이트 2021.06.04 21:59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가정보원을 방문해 “국정원법 전면 개정 입법을 통해 개혁의 확고한 제도화를 달성했다”며 “이제 국정원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국내 정보 수집’을 삭제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됐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방문은 취임 후 두번째로, 오는 10일 국정원 창설 60주년을 맞아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첫번째 방문을 회고하며 “나는 지난 2018년 7월 이곳에서 결코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고, 정권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정치적 중립성을 확실하게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도, 여러분도 그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보기관장 회의를 마치고 지난달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보기관장 회의를 마치고 지난달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은 국정원에 도착해 업무 중 순직한 정보요원들을 기리기 위해 국정원 청사에 설치된 ‘이름없는 별’ 조형물 앞에서 묵념했다. 최근 이 별은 18개에서 19개로 늘었다. 문 대통령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과 직책조차 남기지 않은 채, 오직 ‘국익을 위한 헌신’이라는 명예만을 남긴 이름 없는 별들의 헌신에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방명록엔 ‘보이지 않는 헌신과 애국, 국민과 함께 기억합니다’고 적었다.

국가정보원 새 원훈 [청와대 제공]

국가정보원 새 원훈 [청와대 제공]

국정원은 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원훈석 제막식을 열고 새 원훈(院訓)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을 공개했다. 원훈석의 글씨체는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어깨동무체’를 썼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2016년 타계한 신 교수의 글씨체는 소주 ‘처음처럼’과 문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 등에도 쓰이며 유명해졌다.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쓴 신 교수는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받아 구속된 적이 있다. 20년 옥중 생활 끝에 1988년 전향서를 쓰고 특별 가석방을 받았다. 대북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국정원의 원훈석에 국보법 위반 인사의 글씨체를 쓰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2008년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신 교수가 쓴 서예작품 ‘처음처럼’을 서각으로 만들어 지구대에 걸려다 ‘무기수 출신 작품’ 논란이 일면서 보류한 적도 있다.

이번 새 원훈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부터 사용한 원훈인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를 5년 만에 바꾼 것이다. 국정원은 중앙정보부가 1961년 창설된 이후 초대 중앙정보부장인 김종필 전 총리가 지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를 37년간 원훈으로 썼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정보는 국력이다’로 원훈을 바꿨다가, 이명박 정부 때(2008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으로 다시 바뀌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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