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흥행 대박? 결론은 한국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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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2일 현재 역대 한국영화 흥행 톱10을 꼽아보자. 1위는 1230만명을 불러모은 '왕의 남자', 2위는 1174만명의 '태극기 휘날리며', 3위는 1108만명의 '실미도'. 이어 '친구'(818만명) '웰컴투 동막골'(800만명) '쉬리'(620만명) '투사부일체'(610만명) '공동경비구역 JSA'(583만명) '가문의 위기'(566만명) '살인의 추억'(550만명) 순이다.

이 영화들을 보면 국내 영화 흥행의 한 흐름이 보인다. 바로 한국적 소재와 정서를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왕의 남자'는 광대와 연산군, 질펀한 마당놀이 등 전적으로 한국형 작품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고,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 '쉬리' '웰컴투 동막골' '공동경비구역 JSA'는 역시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현실이 없었다면 나오기 힘든 작품이었다. '친구'는 부산을 배경으로 검은 교복과 극장 단체관람의 추억으로 관객을 안내했고, '살인의 추억'은 경기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잊기 힘든 대한민국 현실을 소재로 삼았다.

이제 여기에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진입할 태세다. 국내에서는 좀체 시도되지 않았던 괴수영화라는 장르가 개봉 5일만에 전국관객 3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호응을 얻는 이유도 따지고보면 역시 한강과 동작대교 밑에서 뛰어놀다가 한강둔치 공원과 매점을 습격한 '한국형 괴수영화'라는 점 때문이다. 물론 봉 감독의 연출력과 변희봉 송강호 등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력은 기본인 것이고.

우선 '괴물'을 관통하는 것은 1980년대 대한민국을 들끓게 한 '화염병'과 '반미', 그리고 '양궁'이라는 키워드다. 극중 변희봉의 유일하게 대학나온 둘째 아들 박해일이 영화 막판 혼신을 다해 던진 것은 바로 화염병이었다. 80년대 대학 운동권의 거의 유일한 사제무기였던 화염병은 철학, 자본론, 국가론, 제3세계론 등 이론학습이 끝난 후 '시가전'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반드시 습득해야했던 필수코스였다.

이 화염병 키워드 바로 곁에는 반미(反美)코드가 도사리고 있다. 봉 감독은 "이 영화를 반미영화로 단순화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영화 초반부터 용산 미군기지가 한강에 버린 수백병의 독극물을 장시간 그대로 노출시킨 의도를 떠올리면, 반미코드는 분명 '괴물'의 중요한 키워드임은 맞다. 그리고 '반미 반제'는 (철학과 세계관이 구호로 요약된다고 할 때) 그 주장의 강도를 떠나, 구한말부터 시작된 외제 침략사를 귀 따갑도록 배운 우리로서는 심정적으로 익숙한 화두인 것이다.

여기에 양궁 역시 80년대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했던 김진호 선수를 시작으로 84년 LA올림픽의 신데렐라 서향순 선수로 이어진 당시 대한민국 최고 인기의 돌발성 스포츠였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괴물'에서도 양궁선수로 나온 배두나의 필살의 한방이 영화막판 극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또하나. 바로 합동분향소 장면이다. 90년대 대한민국에는 왜 그리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던지. 500여명 이상이 유명을 달리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등등. 사고 와중에 피빛 비린내와 유족들의 울음이 뒤범벅된 공간이 바로 합동 분향소인 것이다. '괴물'에선 괴물의 난동으로 어이없이 죽은 이들에 대한 이 합동분향소가 극중 박해일과 그의 형 송강호의 캐릭터가 그대로 드러나는 배경으로 활용됐다.

만약 이런 한국형 요소 없이 '괴물'이 영국이나 아마존을 배경으로 괴수가 출몰해 그곳 소시민 가장과 싸우고, 그 가장이 손에 든 무기가 부메랑 혹은 007급 첨단무기였다면, 이건 누가 뭐래도 할리우드 영화인 것이다. 결국 봉준호 감독이 63빌딩이 보이는 한강을 배경으로 괴물을 등장시키고, 주인공 손에 화염병과 양궁을 들게 한 것은 역시나 적절한 착점으로 읽혀진다. <스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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