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바이든 회담 10일만에…北 "우리 과녁은 대양 너머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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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뒤 열흘만에 북한이 침묵을 깼다. 문제삼은 건 한ㆍ미 미사일 지침 종료였다. 조만간 미사일 시험 발사 재개를 위한 명분 쌓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사일 지침 종료 문제를 비난의 소재로 정한 건 한ㆍ미 밀착 행보에 맞서 북ㆍ중 간 결속을 강화하는 차원이란 분석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여사가 지난 5일 평양에서 열린 군인가족예술 소조 공연을 관람했다고 노동신문이 지난 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후 공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여사가 지난 5일 평양에서 열린 군인가족예술 소조 공연을 관람했다고 노동신문이 지난 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후 공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뉴스1

①개인 명의 논평이라지만...

조선중앙통신은 31일 김명철 국제문제평론가 명의의 '무엇을 노린 미사일 지침 종료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처사는 고의적인 적대행위"라고 비판했다. 일단 북한이 당국 차원의 성명이나 담화 등 공식 입장이 아닌 평론가 개인 명의의 논평을 낸 건 수위 조절 조치로 해석 가능하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특별한 공식 직위나 직함에 따라 발표된 글은 아니며, 일부 전문가들은 발표의 형식으로 볼 때 수위가 낮다는 평가를 한다"고 말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이날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오늘 성명은 공식적인 논평은 아니라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국제문제평론가 명의 개인 논평 #"우리의 자위적 조치"...미사일 주권 강조 #北 겨냥한 사거리, 20년 전 풀었는데...中 입김 유력

개인 명의의 논평이라는 형식을 활용, 상대를 비난하면서도 수위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건 북한이 과거 자주 활용해온 방식이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에 대해선 회담 이틀 뒤인 7월 2일 노동신문에 개인 명의의 논평을 싣고 "친미사대"와 "대미굴종"이라며 비난했다. 또 2017년 9월에는 한ㆍ미 미사일 지침 개정 논의에 대해 노동신문에 개인 논평으로 "감탕속의 미꾸라지가 하늘의 룡이 되여보겠다는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미사일 시험 재개 '밑밥 깔기'

북한이 조만간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를 염두에 두고 미리 정당성 확보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이날 논평에서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저들이 추구하는 침략야망을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의 자위적인 국가방위력강화에 대해 입이 열개라도 할 소리가 없게 되였다"며 미사일 주권을 주장했다. 또한 미국을 향해 "우리의 자위적 조치들을 한사코 유엔 '결의' 위반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추종자들에게는 무제한한 미사일 개발권리를 허용한다"고도 비판했다.

북한은 또 "우리의 과녁은 남조선군이 아니라 대양 너머에 있는 미국"이라고도 경고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장거리 미사일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에둘러 엄포를 놓은 셈이다. 북한이 조만간 시험 발사에 나선다면 지난 3월에 이어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수준의 무력 시위부터 재개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③중국 입김 작용했나

북한이 한ㆍ미 정상회담 이후 9일동안 침묵을 지키다 꼬투리를 잡은 소재가 미사일 지침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사실 북한을 사정권 안에 포함하는 한국 군의 미사일 개발은 지난 2001년 1차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이미 허용됐다. 한국 군 미사일의 사거리가 서울과 평양 간 거리인 180km로 제한됐던 건 미사일지침이 처음 체결된 1979년 때의 일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번 지침 종료의 핵심은 한국 군 미사일의 800km 사거리 제한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950km 떨어진 베이징(北京)이 사정권에 들어오게 된다.

중국 견제 목적이 더 크다는 게 외교가의 지배적인 평가인데, 도리어 북한이 나서서 "우리 주변나라들을 겨냥", "주변국들까지 사정권" 등 '주변'을 4차례에 걸쳐 언급하며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정작 북한이 직접적인 체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미 정상의 북한 인권 관련 지적에 대해선 조용하다. 한·미 공동성명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돼 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최근 한ㆍ미 공조 강화에 대응해 중국에 밀착하는 방식으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날 논평이 지난 27일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이용남 주중 북한대사를 만나 '혈맹'을 강조한지 나흘만에 나온 점도 의미심장하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전략적 선택을 했다면, 이에 대응해 북한 또한 중국에 기대서 대미 균형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ㆍ중 냉전 구도에 올라타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개인 차원의 논평 정도로 수위를 조절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에 대한 북한의 현실적 인식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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