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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기업이 영국에 넘어가다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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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니사가 미국의 대형영화사를 매수·합병했다고 해서 미일간에 시비거리가 되고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영국의 다국적 기업이 일본의 유명음향메이커를 매수한 것을 놓고 전 일본이 시끄럽다.
오디오 팬들에게는 이름이 잘 알려진 산스이(산수) 전기가 지난27일 영국기업 폴리팩 인터내셔널(PPI)사의 자본산하에 들어간다고 전격발표하자 일본언론들은 『그 동안 「일본 기업은 매수가 힘들고 시장이 폐쇄적」이라는 구미 측의 「고정관념」을 깨는 호재』 또는『일본기업도 매수할 수 있다』는 한 본보기라고 요란하게 보도하고 있다.
아사히(조일)시문은 이를 사설로 다루면서 『일본시방의 개방성을 나타내는 일례로 환영하고싶다』고 했고 마쓰나가(송영) 통산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해외자본투자가 진전되면서 한편으로 외국으로부터 대일 투자가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일』 이라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산스이의 매수극은 거의 다 죽게된 회사를 외국자본의 힘을 빌려 회생시키려는 기업구제의 한 형태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산스이 전기의 최근 경영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주력제품이 스테레오앰프인 이 회사는 84년부터 오디오제품의 세계적 과당경쟁에 휘말린 데다 엔고타격으로 85년 10월 이후 경상이익이 마이너스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86년4월에는 전 종업원의 4분의1에 해당하는 3백80명을 퇴직시키거나 주력공장을 분리, 자회사로 바꾸는 합리화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적자상태를 면하지 못해 88년10월말 누적손실이 1백31억엔(약6백15억원)이나 됐다.
국내에서 구조파트너를 찾지 못한 산스이 측은 어쩔 수없이 해외로 눈을 돌려 결국 거래경험이 있는 영 PPI사의 자본참여를 요청하게된 것이다.
매수자인 PPI사 측은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의 의가와 산스이가 갖고있는 VTR생산 라이선스가 목표인 것으로 보인다.
산스이의 매수극에서 보는 것처럼 외국투자가의 일본기업인수사례는 일본 내 기업조차도 거들떠보지 않는 극도의 경영악화기업에 한정되며 투자규모도 1억 달러 정도의 중소기업에 불과하다.
물론 미분사가 주식을 매수한 고이도 제작소의 경우처럼 2천억엔 대의 규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이도사 측은 분사 측이 지명하는 임원의 경영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소니사의 컬럼비아 영화사매수를 놓고 미국의 혼을 샀다고 까지 흥분하는 미국 내 「일본비판」 강경론자들에게 『일본기업도 좀 사면 어떠냐』는 대일장벽시정론에 좋은 구실거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해외기업에 의한 산스이 매수는 『우리 투자 시장도 개방되었다』는 일본의 입지강화용으로 너무 요란스럽게 이용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동경=방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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