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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세월, 포기 안 했더니…” 44년 만에 기적의 재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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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호 10면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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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실종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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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잃지 마세요. 44년 만에 자식을 만난 저 같은 사람도 있는 걸요.”

5세 때 실종 아들 만난 70대 #보호시설서 사진 발견 극적 상봉 #서류에 적힌 이름·생년월일 달라 #1976년 잃어버린 딸 찾은 70대 #DNA 검사 덕 가슴 속 응어리 풀어 #“다른 실종 가족도 희망 잃지 말길”

격려의 말을 전한 김은순(72)씨와 이응순(79)씨는 각각 1976년 같은 해에 자식을 잃어버린 실종 아동 부모다. 아이를 찾아 다녔던 수십년의 세월은 끝이 안보이는 터널을 걷는 듯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침내 그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은순씨는 아동보호시설 일제 수색을 통해, 응순씨는 유전자 검사로 다시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전북 전주시에 살던 은순씨는 아들 전순학(51)씨를 ‘서울 깍쟁이’처럼 귀하게 키웠다. 노점상 생활을 하며 녹록지 않았지만, 아들에게 만큼은 서울말을 가르치고 맵시 좋은 옷을 입혔다. 여느 때처럼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은순씨는 현관문에 마중 나온 아들(당시 만5세)이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 사실을 알게 됐다. 은순씨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나뿐인 아들을 찾기 위해 전국 보육원 문을 두드리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으며 전단을 돌리는 건 은순씨의 일상이 됐다.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았던 순학씨를 발견한 곳은 전북 전주시의 한 보호시설이었다. 경찰청은 보건복지부와 함께 실종 부모와 합동수사팀을 편성해 매년 보호시설과 정신의료기관을 수색해왔다. 2014년 순학씨에게도 기회가 찾아와 해당 시설을 방문해 자료를 살펴봤다. “어, 순학이네!”라며 외치는 복지부 관계자의 외침에 은순씨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류에 적힌 이름은 ‘전순학’이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생년월일도 달랐다. 실종된 이듬해 순학씨가 미국으로 입양된 사실을 발견했다. 순학씨는 어렵게 한국에 사는 어머니와 연락이 닿자 편지로 “나는 가족에게 버려진 줄로만 알았다”며 가족을 잃은 심정을 전했다. 은순씨는 “해당 보육시설에서 아들 사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 아들을 찾지 못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1 미국 입양가정에서 전순학씨가 누나와 물놀이를 하고 있다. 2 김은순씨가 사용해온 전순학씨 실종 전단. 3 전순학씨가 미국에서 양어머니와 함께 찍어 보낸 ‘셀카’. 4 김은순씨와 영상 통화 중인 전순학씨. [사진 김은순]

1 미국 입양가정에서 전순학씨가 누나와 물놀이를 하고 있다. 2 김은순씨가 사용해온 전순학씨 실종 전단. 3 전순학씨가 미국에서 양어머니와 함께 찍어 보낸 ‘셀카’. 4 김은순씨와 영상 통화 중인 전순학씨. [사진 김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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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살던 응순씨도 은순씨와 비슷한 시기에 딸 윤상애(47)씨를 잃어버렸다. 딸(당시 만3세)을 찾기 위해 TV 방송과 라디오 출연까지 나섰다. 하지만 딸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슬픔에 젖어 ‘항상 울고 다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생계를 제쳐 놓고 아이 찾는 데만 매달리다 보니 생활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 찾기를 포기하려고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응순씨는 “아이를 잃어버린 일은 40여년 동안 내 가슴 속 응어리였다”며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아 힘들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응순씨가 딸 상애씨를 다시 만난 건 유전자 검사 덕분이었다. 2017년 상애씨와 일란성 쌍둥이인 윤상희(47)씨와 함께 유전자 채취를 위해 경찰서를 방문했다. 상애씨가 보호시설 어딘가에 있거나 입양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낱같은 희망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지난해 3월, 경찰로부터 응순씨 가족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2016년 한국에서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여성과 어머님의 유전자가 유사하다”며 재검사를 요청했다. 그러는 동안 응순씨는 본인과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사람과 편지, 사진을 교환했다. 상대방에게 사진을 받아보는 순간 응순씨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40여년이 지났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경찰을 통해 두 사람이 친자 관계임을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그는 “44년 동안 쌓인 고통이 단 한 순간에 쓸어내려 간 느낌이었다”라며 “세상 누구 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은순씨와 응순씨는 미국에 있는 자녀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생계를 이유로 당장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코로나19 확산으로 만남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은순씨는 SNS를 통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디 아프지 않은지 등 순학씨의 안부를 매일 묻는다. 안부를 물을 때면 서로의 ‘셀카’를 찍어 잘 지내고 있다는 인증도 한다. 은순씨가 “엄마 사랑한다고 한번 해줘”라고 하면 무뚝뚝한 순학씨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며 커다란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보내 그리운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응순씨 가족도 지난해 10월 경찰청 실종가족지원센터의 지원으로 통역사 도움을 받아 상애씨와 영상 통화를 했다. 44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딸의 얼굴은 잃어버렸을 때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응순씨의 입에서는 “아이고, 보고 싶었다!”는 외침이 연신 터져 나왔다. 응순씨는 “너무 좋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 말부터 나왔다”고 했다. 상애씨는 어머니, 오빠, 언니를 보고 “새로운 가족이 많이 생겨 대가족이 됐다”며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빨리 한국에 가서 가족과 직접 만나고 싶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두 어머니는 “오랜 기다림 끝에 상봉한 우리의 사연이 다른 실종 가족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은순씨는 “오랜 시간 자녀를 애타게 찾으며 몸과 마음이 상한 부모가 많다”며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모 본인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했다. 응순씨도 “고통스러운 세월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다른 실종아동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나윤 기자, 정준희 인턴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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