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만능 아니고 경찰 인력 부족, 장기 실종사건 해결 못해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29 00:02

업데이트 2021.05.2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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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호 08면

[SPECIAL REPORT]
장기 실종 아이들 840명

지난 25일 박성훈(가명·65)씨는 서울 종로구 우체국 광화문점을 찾았다. 그는 1992년 5월 유치원에 다니던 딸(당시 만 5세)을 잃어버렸다. 박씨는 딸을 데리고 경기도의 한 유원지에 놀러 갔다가 잠시 화장실에 들른 뒤 아이 간식을 사러 다녀온 사이 사라졌다고 했다. 아이는 화장실과 멀지 않은 유원지 모래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절대 다른 곳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불과 10분도 안 돼 돌아와 보니 없어졌다는 것이다. 딸이 입은 옷과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했지만,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벌써 29년이나 흘렀다. 이날 박씨는 “아이를 혼자 둔 내가 죄인이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매년 실종 아동 신고 2만 건
작년 92건, 올해는 11건 못 찾아
12~17세 휴대폰 꺼 수색 애먹어
발달장애아 위치추적기 논란도

실종·유괴 땐 내달부터 재난문자
전담 인력 확보, 예산 지원해야

현재 추정 모습 ‘호프테이프’ 등장  

박씨가 이날 우체국을 찾은 건 실종 어린이 얼굴이 담긴 박스 테이프를 보기 위해서다. 박씨가 눈을 떼지 못하는 박스 테이프는  ‘실종 아동의 날’을 맞아 경찰청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우정사업본부·제일기획·한진택배와 함께 기획한 ‘호프(hope)테이프’다. 호프테이프에는 장기실종 아동의 실종 당시 모습과 경찰청의 ‘나이변환 몽타주’ 기술로 재현한 현재 추정 모습 등 실종 아동의 정보가 담겨 있다. 장기실종 아동들의 얼굴 사진이 담긴 테이프를 만지던 박씨는 “지금은 나라에서 이런 시도라도 해줘서 다행이다”라며 “호프테이프가 붙은 택배 상자가 전국에 퍼져나가 한 가족이라도 잃어버린 아이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씨는 이날 우체근 인근 중구 프레스센터 앞 서울마당을 찾았다. 이곳 잔디밭에는 아이들 신발 300켤레가 놓여 있었다. 실종 아동 문제를 포함해 아동 복지 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는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마련한 전시행사다. 박씨는 “그동안 이사를 세 번 했지만 그때마다 아이가 좋아하던 꽃무늬 신발만큼은 버리지 않고 챙겼다”고 했다.

매년 경찰청과 각 지자체, 실종아동전문센터 등은 장기실종 아동의 과거사진과 현재 추정 모습, 특징 등을 담은 전단을 공개·배포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missingchild.or.kr)에서 추가 정보를 볼 수 있다. [사진 아동권리보장원]

매년 경찰청과 각 지자체, 실종아동전문센터 등은 장기실종 아동의 과거사진과 현재 추정 모습, 특징 등을 담은 전단을 공개·배포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missingchild.or.kr)에서 추가 정보를 볼 수 있다. [사진 아동권리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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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경찰에는 실종 아동 신고(18세 미만)가 평균 2만 건 정도 접수된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건수 중 대부분은 당일 혹은 늦어도 이틀 내에는 아이를 찾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찾지 못하고 미해결 상태로 해를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1만9400여 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92건(발견율 99.5%)은 미해결로 남아있다. 올해 들어선 4월 말 기준으로 6068건의 아동 실종신고가 접수됐고, 11건은 미해결 상태다.

골든타임을 지나 장기실종으로 분류하는 아동수는 840명에 달한다. 1~5년 116명, 5~10년이 15명, 10~20년이 46명, 20년 이상은 663명으로 집계됐다. 누구나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CCTV가 도처에 널려있는 시대에 실종 아동을 빨리 찾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현철승 경기도 의정부경찰서 실종수사팀 경위는 “CCTV 사각지대에서 실종되거나, CCTV에 찍혔다 하더라도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 목적성 없이 움직이면 동선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CCTV 추적이 만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CCTV를 이용해 동선을 추적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수색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고, 실종자는 그 사이 계속 멀어지기 때문이다. CCTV 화질이 좋다고 해도 상당히 먼 거리에서 찍히는 경우도 적지 않아 정확한 실종자 파악에도 애를 먹는다. 현 경위는 이어 “전산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복지카드 등을 사용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수색 범위가 줄어들지만 지하철 게이트를 무단으로 통과하는 식으로 이동하면 찾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매년 5월 25일 ‘실종아동의 날’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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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따르면 실종 아동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경우는 만12세~17세의 청소년이다. 영유아나 초등학생의 경우엔 자발적 가출 사례가 별로 없고 보호자를 이탈해 단순히 길을 잃는 정도라 실종 장소 부근에서 발견될 때가 많다.

현 경위는 “가출 청소년 경우엔 일부러 휴대 전화를 받지 않거나 꺼놓고 이동하고, 일부는 연고가 없는 지역의 친구 등 집에 머물러 있으면 장기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실종자 수색을 위한 경찰 현장 인력 부족도 현실적인 문제다.

일반 아동보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의 실종도 빈번히 발생한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실종 발달장애인 2만4300여 명 중 218명(미발견 77명, 사망 141명)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들 중 18세 미만 아동의 수도 적지 않다. 발달장애인은 인지·판단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의 실종 사건 이상으로 수색하는 데 애를 먹는다. 이들 중에는 휴대전화와 같은 연락 수단을 지니지 않은 채 실종되는 경우가 많다. 2019년 7월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발달장애인인 중학생 조은누리(당시 14세)양은 어머니와 등산 중 실종됐다. 군경 5700여명이 수색에 투입됐고, 군견까지 동원해 실종 11일 만에 구조됐다. 실종 장소가 인적이 드문 산인데다 휴대 전화도 가지고 있지 않아 가족에게 연락할 수단도 없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아동 실종 시 신속한 위치파악을 위해 위치추적 단말기 보급 대책도 나왔다. 예산 부족으로 단말기 지원 건수는 실제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일각에선 장애아동 의사와 상관없이 위치를 감시하는 문제에 대한 논란이나 또 다른 부정적 인식 확대로 변질될 우려 때문에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현실적으로 실종 아동 문제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지문 등 사전등록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보호자가 아이의 사진 및 인적 사항을 경찰청 운영 프로파일링 정보시스템에 입력하는 것을 말한다. 경찰에 따르면 아직까지 18세 미만 아동의 절반 정도만 지문 사전등록을 했다. 2007년 정부가 5월 25일을 ‘실종아동의 날’로 지정한 이래 매년 이맘때면 정부 기관과 민간 기업 등이 실종 아동 캠페인을 활발하게 펼친다. 또 다음 달 9일부터는 실종아동법 개정안도 시행된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개정안은 실종이나 유괴 아동 정보를 재난문자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기원 (사)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수사관 한 사람이 수십 년 실종된 아이들 여러 명을 담당하고 있다”며 “경찰은 전담 인력을 더 확보하고, 정부는 아동 실종 예방과 수색 등을 위한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윤혜인 인턴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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