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섬까지 전단 수천만 장 “생사만이라도…”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29 00:22

업데이트 2021.05.2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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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호 09면

[SPECIAL REPORT]
장기 실종 아이들 840명

경기도 안산에 사는 정원식(72)씨의 시계는 1991년 8월 5일에 멈춰서 있다. 30년 전 잃어버린 딸 정유리(당시 11세·현재 41세)씨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정씨가 2년 만에 유리씨를 만나던 날이었다. 생계가 어려워 친가에 맡겨둔 딸이 여름방학을 맞이해 집으로 돌아오자 집안은 온통 딸아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30년 전 11세 딸 실종된 70대
한쪽 눈 실명됐지만 절대 포기 안 해
“수사 한다지만, 가뭄에 콩 나듯 회신”

22년 전 고교생 딸 잃은 가장
전 재산 털어 화물차 타고 전국 뒤져
아내 극단 선택, 희망 잃지 않고 버텨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마당에서 딸아이와 같이 놀던 동생들이 “어떤 아줌마, 아저씨가 찾아와서 언니를 데려갔다”라며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뛰놀던 딸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정씨는 “실종 당시를 생각하면 유리를 지켜주지 못한 게 가장 가슴 아프다.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딸아이가 눈앞에 아른거린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너무 놀란 정씨는 맨발로 뛰어나와 딸을 찾아 헤맸다. 온 동네를 돌아다녀도 아이가 보이지 않자 결국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다. 정씨는 경찰에게 “동네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도로를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괴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날 찾아간 경찰서 문 앞에서 정씨는 허탈감에 빠졌다. 담당자는 유괴가 아닌 단순 가출로 판단해 사건을 처리했다. 당시 실종 아동과 단순 가출을 구별하는 수사지침이 없었던 탓에 초동 조치가 미흡했다. 당시 경찰은 유리씨가 실종된 지 5일이 지나서야 가족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물었다.

경찰에게만 맡겨둘 수 없었던 정씨는 직접 유리씨를 찾아 나섰다. 발이 닿는 곳이라면 무작정 나서 전단을 돌렸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화물차 기사는 정씨에게 “나이 어린 여자애들은 성매매 업소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건넸다. 덜컹하는 마음에 무작정 청량리, 미아리, 군산 등지의 성매매 집창촌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일일이 업소 문을 열고 들어가 “어린아이가 있냐?”고 물으며 고객인 척 딸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때마다 욕을 먹고 매를 맞기 일쑤였지만 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정씨는 매년 4만 장 이상의 전단을 돌린다. 일흔이 넘은 고령에도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유리씨를 애타게 찾고 있다. 한쪽 눈은 실명이 됐고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허리와 무릎 통증이 생기지만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딸아이를 생각하며 매일 현관문을 나선다.

매년 경찰청과 각 지자체, 실종아동전문센터 등은 장기실종 아동의 과거사진과 현재 추정 모습, 특징 등을 담은 전단을 공개·배포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missingchild.or.kr)에서 추가 정보를 볼 수 있다. [사진 아동권리보장원]

매년 경찰청과 각 지자체, 실종아동전문센터 등은 장기실종 아동의 과거사진과 현재 추정 모습, 특징 등을 담은 전단을 공개·배포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missingchild.or.kr)에서 추가 정보를 볼 수 있다. [사진 아동권리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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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는 그를 더 힘들게 한다. 정씨는 “작년, 재작년까지만 해도 전단을 많이 돌렸었는데 코로나19 탓에 전단 받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라며 “나이가 들어서 헛기침이라도 하면 사람들 눈치가 보이지만 그래도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뿌린 전단만 얼추 수백만 장이지만 결정적 제보는 없었다. 정씨는 “드물지만, 꾸준히 제보 전화가 오기 때문에 포기를 못 하고 있다”라며 “꼭 제보가 아니더라도 ‘찾으실 수 있을 거다’, ‘힘내라’는 연락이 계속 와 고맙게 느낀다”고 답했다.

정씨 가족 사례처럼 아동 실종이 장기화할수록 유의미한 수사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장기 실종 아동의 부모 중 적지 않은 수는 경찰 수사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시간이 흘러 증거를 찾기가 힘들고, 드물게 걸려오는 제보 전화마저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정씨는 “경찰은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가뭄에 콩 나듯이 회신이 온다”라며 “30년째 지켜봤지만 수사를 제대로 하는 건지, 다른 사건에 비해 뒷전으로 치부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취재진과 전화 통화 내내 울먹이던 정씨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유리를 다시 만나면 꼭 껴안고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엄마·아빠가 아직도 기다리고 있으니 모든 걸 제쳐놓고 꼭 와줬으면 좋겠다. 딸을 데려간 사람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아이를 돌려 보내줄 수 없다면 생사만이라도 확인해줬으면 좋겠다.”

22년 전 평택에서 고등학생 딸을 잃어버린 송선기(가명)씨 역시 “10년 동안 담당 형사가 한해도 빠지지 않고 바뀌었다. 심지어 어떤 해에는 아이를 찾아줄 테니 대가를 요구하는 형사도 있었다”라며 “실질적 변화도 없으니 부모가 직접 발로 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송씨의 딸 예인(가명)씨는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실종됐다. 전교 1~2등을 오갔던 예인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이었다. 경찰의 수색에도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하자 송씨는 전 재산을 털어 화물차에 올랐다. 현수막, 전단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하루에 뿌린 전단만 2000~3000장, 지금까지 수천만 장에 이른다. 보호시설, 땅끝마을, 섬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2015년에는 아이를 찾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에 걸렸으나 딸을 생각하며 20일 만에 병상을 털고 일어났다. 허리가 고장 나고, 귀가 먹어가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예인씨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은 아이의 사진을 끌어안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하지만 송씨는 “내가 죽으면 결국 아이를 누가 찾겠느냐”는 생각에 지금까지 고통의 세월을 버티고 있다.

오유진 인턴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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