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마라톤 5㎞ 완주한 서해교전 부상 이희완 대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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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키다 장렬히 산화한 전우들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해 마라톤에 참여했습니다."

임진강 남단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일대에서 12일 펼쳐진 '제1회 전우마라톤 대회'에는 서해교전 당시 두 다리를 크게 다친 이희완(李凞玩.27.해사54기)대위가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李대위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꿋꿋하게 '건강달리기 코스'(5㎞)를 완주해 다른 참가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결승선에 들어선 뒤 가쁜 숨을 몰아쉬던 李대위는 "서해교전에 참전했던 참수리호 전우 15명이 서해교전의 아픈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강한 정신과 신체로 지금도 현역에서 소임에 충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완주 소감을 밝혔다.

李대위는 서해교전 때 윤영하 정장이 전사하자 위기에 놓인 참수리 357호를 지휘하다 북한 경비정이 쏜 포탄에 맞아 양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

우측 다리에 의족을 하고 좌측 다리에는 뼈 이식수술을 받은 뒤 재활훈련을 거쳐 현재 해군사관학교에 근무 중이다. 달리기가 쉬울 리 없다.

"처음 참가 권유를 받았을 때는 완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먼저 간 전우들을 기리고, 내 자신에게도 좋은 도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참가를 결심했죠."

한번 마음을 굳게 먹은 李대위는 대회 참가를 위해 고통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우선 한달 보름 전쯤 해사 체육교관을 찾아갔다고 한다. 체계적인 지도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해진 하체근육을 강화하는 훈련에 돌입했다.

李대위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부드러운 잔디밭 걷기. 두 다리가 성한 일반인들에게는 수월한 운동량이지만 李대위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시간 이상씩 잔디밭에서 땀을 흘렸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곧 실전과 같은 환경인 도로 위에서 빨리 걷기 연습도 하게 됐다. 피나는 노력을 계속한 끝에 어느덧 5km도 거뜬히 걸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李대위는 "코치를 자처한 '몬주익의 영웅' 마라토너 황영조씨가 건강달리기 내내 보폭과 체력 조절에 대한 조언과 함께 격려를 해줘 큰 도움이 됐다"며 "국민이 서해교전 전사자들의 넋과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마라톤에는 李대위 외에도 참수리 357호 친목모임인 '서해교전 전우회'의 다른 회원 3명도 참가해 뭉클한 전우애와 강인한 군인정신을 발휘했다.

한편 건군 55주년과 한 .미동맹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방일보가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한 이번 마라톤 대회는 국군 장병은 물론 주한미군 등 외국군 장병과 제대군인.군인가족.일반 시민 등 모두 6천5백여명이 참가, 대성황을 이뤘다.

하프코스를 완주한 주한 이탈리아 무관 조르지오 피아니아니(51)대령은 "전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한국 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방지역에서 마음껏 달린 일은 한국 근무 중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홍보원 김준범(국방일보 발행인)원장은 "이번 행사는 군.국가안보와 관련된 최초의 마라톤 대회"라며 "이번 대회를 통해 민.관.군이 하나가 돼 확고한 안보의지를 다지면서 외국 장병들과도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철희.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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