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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산업 탄소 감축, 정부가 전력 문제 풀어줘야 가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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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호 14면

‘2050년 탄소중립’ 숙제

이달 말 대통령 직속의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한다. 그동안 정부 조직으로 운영하던 녹색성장위원회와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등을 하나로 통합해 새로 출범하는 기구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우선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감축계획을 수립하고,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새로 정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2017년(7억910만t) 대비 24.4% 감축한 5억3600만t으로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로부터 너무 낮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8일 전격적으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여 실질적 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는 상태를 말한다.

코크스 대신 수소 이용 제철 공법 #탄소 확 줄이지만 많은 전기 필요 #발전 분야 탈 탄소화도 병행해야 #미 “탄소 없는 에너지는 원자력뿐” #차세대 원전, 소형 원자로가 대안

코크스 공법, 이산화탄소 대거 내뿜어

기업 입장에서도 탄소중립은 발등의 불이다. 지난해부터 이른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S)이나 지배구조(G)는 기업이 의지를 갖고 시행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비롯한 환경(E) 문제는 개별 기업이 홀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ESG 경영이 부상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 중 하나가 철강산업이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산업별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발전이 37.3%로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철강산업으로 19.2%다. 그렇다고 발전과 철강산업을 멈춰 세울 수도 없다. 국가 기간산업으로 주변 산업은 물론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나마 발전은 소형원자로 등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철강산업은 아직까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철강산업의 탄소 배출은 용광로에서부터 시작된다. 철광석(철을 함유한 자원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 철강을 만들기 위해서는 뜨거운 열원(熱源)이 필요한데, 이 때 열원 역할을 하는 것이 석탄을 가공한 코크스다. 코크스는 철강산업뿐 아니라 증기기관을 탄생시켜 산업혁명을 이룬 핵심 기술이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를 대거 내뿜어 오늘날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철강산업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코크스를 대신할 열원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코크스를 사용하는 용광로 공법보다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전기로 공법(고철을 사용해 쇳물을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이 공법으로 생산한 철강 제품은 품질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널리 쓰이질 못한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은 18억7000만t인데 전기로 공법으로 생산한 철강은 27.7%인 5억2400만t에 그친다.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철강산업의 탈(脫) 탄소화는 불가한 걸까. 꼭 그런 건 아니다. 크게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전기로 공법 확대와 함께 용광로 공법 때도 고철을 많이 쓰는 방법이 있다. 지금도 용광로 공법 때 내부 온도조절이나 원가절감 목적으로 약 10% 정도 고철을 투입한다. 이걸 50% 정도로 늘리면 탄소 배출량을 그 만큼 줄일 수 있다. 다만 고철 수급이 문제다. 고철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게 탄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보니 이미 세계 주요 국가가 고철을 ‘국가 자원화’하고 있다. 고철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중국이 2025년까지 전기로 공법 비중을 현재 10.4%에서 20%까지 늘리겠다고 하면서 고철 가격은 급등세다. 유럽 일부 국가는 아예 고철 수출을 금지했다. 세계적으로 고철 확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두 번째는 직접환원철(DRI·용광로를 이용하지 않고 가스 등으로 철광석을 가공하는 것) 방식이다. 철광석에서 철을 분리하는 환원제로 천연가스 등을 사용하는 공법인데, 주로 고철이 부족하고 천연가스가 풍부한 지역에서 사용해 왔다. 지금까지는 천연가스보다 석탄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확산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주요 나라가 탈 탄소 정책을 강화하고, 고철 가격이 비싸지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 독일의 티센크루프사는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30% 감축을 목표로 2025년까지 DRI 공장을 완공할 계획이다. 그러나 첫 번째, 두 번째 방법은 철강산업 탈 탄소화의 궁극적 목표인 수소환원제철로 넘어가기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전기로는 탄소 배출 줄지만 품질 떨어져

수소환원제철 공법은 환원제로 코크스나 천연가스가 아닌 수소를 사용한다. 청정에너지인 수소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철강산업 탈 탄소화의 궁극적 목표로 꼽힌다. 이 기술만 확보한다면 철강산업은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이 공법은 아직 상용화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독일 등이 상용화 연구를 시작했거나 하고 있지만, 아직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철강기업이 ESG 경영을 위해서라도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기업을 넘어 나라 전체로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철강산업에서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탄소중립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도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철강산업은 기간산업으로 주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당장 고품질의 철강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면 국내 자동차·조선·가전업체 등이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된다. 다만 수소환원제철 공법을 개발하더라도 정부로서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발전 분야의 탈 탄소화다.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 과정에서도 흡열반응(온도 저하)이 일어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추가적인 열을 공급해 줘야 한다. 이 열을 공급해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 전기다. 철강산업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자고 발전에서 더 많은 탄소를 내뿜는다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철강산업의 탈 탄소화를 위해 수소환원제철 공법 개발에 투자하되, 수소 생산에 필요한 전기 생산을 위해 발전 분야의 탈 탄소화를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빌 게이츠가 투자하는 차세대 원자력 발전소나 우리나라가 일부 기술을 확보한 소형모듈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500㎿급 전후의 SMR은 전력 생산 뿐 아니라 수소 생산이나 담수화 등 다양한 용로도 활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미국·프랑스·러시아 등이 현재 50여 종의 SMR을 개발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올해 2월 출판한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밤낮과 계절에 관계없이 대규모로 전력을 생산하고 지구 어디서나 작동하면서 유일하게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원은 원자력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018년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진이 미국 전역에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1000여 개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언제나 원자력이었다”고 덧붙였다.

철강산업, 그리고 발전이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탈 탄소화를 이루려면 기업과 정부가 해야 일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더불어 효과적인 탈 탄소화를 위해서라도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면서 마음껏 전기를 쓸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온실가스 순 배출량 ‘0’으로 줄이기…갈길 먼 ‘2050 탄소중립’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8일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은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첫 발을 뗀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 70여 개 국가가 이미 선언한 탄소중립 선언에 동참했다는 의미가 있고, 이 선언으로 문재인 정부가 공언했던 국내 석탄발전 퇴출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아직은 ‘선언’에만 그친다. 정부가 지난해 말 UN에 제출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 장기저탄소 발전전략’(LEDS)엔 10년 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추진 전략이 담겨 있다. NDC는 2017년 배출량(7억910만t) 대비 24.4% 감축을 제시하고 있다. LEDS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장기 비전과 국가 전략을 제시했다.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은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LNG 발전은 CCUS(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 연계를 통해 전환하기로 했다. 산업 분야는 미래 신기술, 자원 선순환을 통해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녹색 산업공정을 추진한다. 또 내연기관차 중심의 수송 분야는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전환해 탄소 배출을 줄여 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산업·수송·건물 등 사회 전체의 대변혁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대 여론 설득과 구체적인 정책, 법제화까지 여러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선언을 했다고 해서 당장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셈이다.

김경식 고철연구소장(전 현대제철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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