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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시속 80㎞ 이혜진, “도쿄서 첫 금빛 페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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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이혜진은 자신의 세 번째 출전인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사이클 첫 메달에 도전한다. [연합뉴스]

이혜진은 자신의 세 번째 출전인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사이클 첫 메달에 도전한다. [연합뉴스]

18일 강원 양양 종합스포츠타운 사이클 경기장. 38~40도가량 경사진 333m 트랙을 오토바이가 앞장서 돌았다. 사이클을 타고 뒤따르던 이혜진(29·부산지방공단스포원)이 페달을 더 빨리 밟으며 속도를 올렸다. 탄성을 자아낼 만큼 놀라운 스피드였다.

한국 사이클 올림픽 첫 메달 기대 #순위로 가리는 경륜 전 세계 1위 #야외 트랙서 근력 훈련 구슬땀 #‘사이클=베팅’ 인식을 바꾸고 싶어

자전거로 최고 시속이 얼마나 될까. 이혜진은 “혼자 타면 시속 60㎞ 중반. 오토바이 유도를 받아 당기면 시속 80㎞까지 나올 거다. 도로를 타다가 ‘과속 단속 카메라에 찍히는 거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며 웃었다.

이혜진의 주 종목은 여자 경륜이다. 실내 벨로드롬의 250m 트랙을 6바퀴 돌아 기록이 아닌 순위를 가린다. 오토바이를 탄 유도 요원이 속도를 끌어올리며 3바퀴를 돌고 빠지면, 선수 6명이 순위 경쟁을 벌여 가장 먼저 결승선에 들어온 사람이 우승이다. 빙상 쇼트트랙과 비슷하다.

이혜진은 2019년 국제사이클연맹(UCI) 여자 경륜 세계 1위에 올랐다. 지난해 3월 세계트랙사이클선수권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2019년 트랙 월드컵에서 2회 연속 우승했다. 코로나19로 국제대회 출전이 줄어 세계 랭킹은 6위로 떨어졌다. 지난해 컨디션이 절정이었는데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됐다. 그래도 담담하다. 그는 “난 아직 일등이 아니다. 마음속 일등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해 레인보우 저지를 입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림픽이 안 열려도 어쩔 수 없다. 멘털이 좋은 게 아니라 생각이 단순한 것”이라고 자신을 평가했다.

이혜진은 자신의 세 번째 출전인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사이클 첫 메달에 도전한다. [연합뉴스]

이혜진은 자신의 세 번째 출전인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사이클 첫 메달에 도전한다. [연합뉴스]

이혜진은 중학교 1학년이던 2004년 사이클에 입문했다. 그는 “부모님이 동네(경기 성남시)의 경사가 심하다고 자전거를 안 사줬다. 그런데 학교에서 ‘사이클을 하면 자전거를 준다’고 했다. 그땐 경기장 경사가 이렇게 심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

20대 중반인 2019년 월드클래스로 발돋움했다. 박일창 대표팀 감독은 “대한자전거연맹에서 10년 이상 키웠다. 스위스에 있는 세계사이클센터(WCC)도 다녀왔다. 대회에 많이 출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치다 보니 감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에는 기회가 와도 스퍼트를 못 했는데, 지금은 망설이지 않는다. 간이 크다. 쇼트트랙처럼 안쪽 또는 바깥쪽의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여기서 잘해야 하는데, 순간포착 센스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이혜진은 5월에는 바람이 많이 부는 양양의 야외 벨로드롬에서 훈련한다. 기어를 무겁게 올리는 ‘오버 기어 트레이닝’을 한다. 근력과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한때 어깨관절와순이 찢어졌었는데, 재활을 거친 뒤 근력이 더 좋아졌다.

키 1m65㎝ 이혜진의 허벅지는 터질 듯하다. 그는 “허벅지가 아주 두꺼워 청바지는 잘 안 입는다. 통이 넓은 슬랙스를 대신 많이 입는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도 없고 취미는 여행이다. 혹시 여행도 자전거를 타고 할까. 이혜진은 “어휴 그렇게는 절대 안 한다. 차는 액셀(러레이터)만 밟으면 나가지 않나”라며 웃었다.

이혜진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올림픽이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앞 선수가 넘어져 이혜진도 휘청했고,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2012 런던올림픽 때는 10대로 너무 어렸다. 리우 때는 메달을 따야지 했는데, (결선행 실패의) 데미지가 너무 컸고 사이클을 타기 싫었다. 지금은 내가 할 것만 하자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이클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따고 싶은 이유가 이혜진에게는 따로 있다. 그는 “런던 월드컵에 갔는데, 관중을 1, 2부로 나눠 받을 만큼 유럽은 사이클 인기가 높다. 반면 우리는 경륜하면 스포츠 베팅을 먼저 떠올린다. 여자 선수가 많이 줄었다. 올림픽 메달로 사이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양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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