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남은 우유는 아까워도 버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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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균=노로 바이러스, 원인식품=확인 불가’. 사상 최대의 학교급식 식중독 사고에 대한 보건 당국의 잠정 결론이다. 이로써 원인균만 있고, 원인식품은 없는 ‘영구 미제’ 사고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원인식품을 밝히지 못하면 혐의를 받은 식품회사에 면죄부가 주어진다. 국민은 큰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식중독의 세계’에선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사람의 가검물에선 식중독균이 잘 증식되는데 반해 음식에선 식중독균이 거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고 학교 보존식(음식을 3일간 냉장 보관)의 남긴 양으론 검출이 어렵다. 이처럼 식중독을 법·제도만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식중독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 먹거리 비상 시기에 내가 꼭해야 할 일(Do it)과 해서는 안 되는 일(Don’t do it)은 무엇일까?

전체 식중독 사고의 90% 이상은 세균.바이러스 등 식중독균(미생물)이 일으킨다. 따라서 최선의 식중독 예방책은 식중독균을 죽이는 것이다. 여기엔 세 방법이 있다.

첫째, 열을 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식중독균은 가열하면 죽는다. 그러나 채소.과일.김치.생선회 등 원천적으로 가열 조리가 불가능한 식품이 적지 않다는 게 고민이다.

둘째, 소독 훈증제 살포다. 그러나 식품에 훈증제 성분이 잔류할 수 있고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있다.

셋째, 방사선 처리다. 식품에 소량의 방사선을 쬐어 미생물을 죽이는 방법이다. 이때 방사선은 식품에 잔류하지 않고 그냥 통과한다. 또 20도 안팎의 낮은 열만 발생시키므로 식품의 풍미.영양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방사선에 대한 우리 국민의 막연한 우려를 씻어내는 것이 과제다. 무엇보다 국내에는 방사선 조사 시설이 두 곳 뿐이다.

사람과 취향 비슷한 식중독균

식중독균은 사람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첫째, 20도가량의 온도를 좋아한다. 이 온도에서 식중독균은 빠르게 증식한다. 그러나 63도 이상이 되면 죽거나(세균) 활성을 잃는다(바이러스). 열에 유독 강한 황색 포도상구균 정도만 살아남는다. 둘째, 물이 없으면 못 산다. 식중독균은 습도가 극히 낮은 것을 못 견딘다. 손.주방기구.조리대를 깨끗이 닦은 뒤 잘 말리면 식중독균은 수분 부족으로 죽는다. 셋째, 추위를 싫어한다. 식중독균은 냉장고 안에서 증식을 못 한다. 예외적으로 리스테리아균 정도만이 냉장 온도에서도 자란다. 따라서 식품 라벨에 유통기한과 함께 표시된 식품의 보관방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냉장 보관'이면 냉장 온도(0~10도, 냉장실), '냉동 보관'이면 냉동 온도(-18도 이하, 냉동실)에 보관한다. 넷째, 먹이가 있어야 산다. 특히 식중독균은 우유 등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을 좋아한다. 여름에 먹다 남은 식품은 아까워도 버린다.

교차 오염, 2차 감염 막아야

육류 조리용 주방 도구(도마.칼.행주 등)와 채소.과일용 도구를 따로 갖추는 것도 효과적인 식중독 예방법이다. 그래야 한쪽에 묻은 식중독균이 다른 쪽에 전해지지 않는다. 쇠고기가 병원성 대장균인 O-157에 오염됐다고 가정하자. 이 쇠고기를 썬 칼로 과일을 깎으면 과일에 O-157균이 옮겨진다. 이를 '교차 오염'이라 한다. 회 뜨는 칼.도마로 채소를 다듬어도 교차오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번 학교급식 사고의 원인균인 노로 바이러스는 '2차 감염'이 가능하다. 2차 감염은 식중독 사고 환자(학생)가 사고 장소(학교)에 없었던 사람(학부모나 가족)에게 식중독균을 옮긴다는 뜻이다. 단 노로 바이러스를 제외한 살모넬라균.황색 포도상구균.장염 비브리오균 등 대부분의 식중독균은 2차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콜레라.세균성 이질 또한 2차 오염이 가능하다. 이런 세균은 식중독균이 아니라 전염병균으로 분류된다.

첫째도 청결, 둘째도 청결

식중독을 예방하려면 손을 자주 씻는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외출하거나, 더러운 것을 만지거나, 화장실에 다녀온 뒤의 손씻기는 필수다. 손에 각종 식중독균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손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조리를 해선 안 된다. 황색 포도상구균에 오염돼 있을 수 있다. 노로 바이러스 식중독 환자는 치유되더라도 적어도 3일간은 음식을 조리하지 말아야 한다.

식중독 사고가 빈발하는 여름엔 지하수.약수.우물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수돗물과 달리 염소 소독을 안 한 상태이므로 노로 바이러스 등 각종 식중독균 오염 가능성이 있다.

화장실 변기.싱크대.문 손잡이는 락스 등 염소 소독제로 소독하고 10~20분 뒤 물로 잘 닦아준다.

도움말=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의종 교수, 신구대 식품영양과 서현창 교수, 연세대 강영재 겸임교수, 질병관리본부 허영주 역학조사팀장

◆ 식중독 예방을 위한 식품 취급법

■ 냉장고의 온도 점검

■ 상하기 쉬운 음식은 가능한 한 빨리 냉장 보관

■ 남은 음식은 조리 후 한 시간 이내에 냉장

■ 재가열한 음식이 남으면 버림

■ 조리한 음식과 익히지 않은 음식 간 접촉을 피함

■ 도마는 철저히 닦아 말림

■ 행주는 매일 바꾸고 삶아 빨 것

■ 애완동물은 부엌에 들이지 않음

■ 바구미·벌레가 있는지 점검

■ 더러운 것을 닦은 뒤엔 손을 깨끗이 씻음

■ 조리대에서 더러운 것을 닦지 않음

자료=식품의약품안전청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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