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식중독사고 원인 규명 실패

중앙일보

입력

보건 당국이 사상 최대 규모였던 학교 급식 식중독 사고 원인 규명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위탁급식 업체와 식재료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30일 CJ푸드시스템이 관련된 집단 식중독 사고의 중간 역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검사 환자(1821건)의 6.6%(121건)에서 검출된 노로바이러스가 원인균이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는 그러나 노로바이러스에 오염된 것으로 의심받던 납품업체의 지하수와 직원들에 대한 두 차례 검사에서는 바이러스를 검출하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학생들의 식사 데이터베이스를 분석, 식중독 사고의 매개 음식을 파악한 뒤 추가 발표를 할 방침이다. 오대규 질병관리본부장은 "원인균(노로바이러스)은 확인했으나 어떤 경로로 감염됐는지와 원인 물질이 뭔지를 규명하지 못했다"며 "추가 검사 발표는 앞으로 2~3주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별도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달 29일 검찰과 공조해 CJ푸드시스템 본사와 연구소를 압수수색했다. 여기서 집단식중독 원인을 회사가 자체 분석한 내부 자료를 입수해 분석 중이다.


◆ 왜 못 밝혔나=물증이 없어서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25일 밤 CJ푸드시스템에 채소류를 납품한 업체의 지하수를 채취했다. 집단 식중독 증상이 나타난 21일부터 나흘이 지난 뒤였다. 본부 측은 "지난달 23일 역학조사를 시작해 노로바이러스가 원인일 수 있다는 결과를 얻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CJ푸드시스템은 이미 지난달 21일 이 업체의 지하수를 채취해 검사했다. 검사 결과는 지난달 25일 질병관리본부에 통보됐다. 본부는 CJ 측이 제공한 시료에서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했다. 이는 환자 대변에서 나온 것과는 다른 유형이었다. 이 결과는 4ℓ만 채취한 것이어서 공식 조사로 인정되지 않는다. 공식 조사에선 1.5t을 채취한다.

이 때문에 CJ가 적극적으로 지하수 문제를 정부에 알렸거나, 정부가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면 원인이 규명됐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지하수에선 일반 세균도 검출돼 깨끗하지 않은 상태였다. 허영주 역학조사팀장은 "채취 시점이 3~4일 차이 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 애매해진 책임 소재=보건 당국이 원인 규명에 실패함으로써 누가 책임을 질지가 애매해졌다.

2003년에도 대규모 식중독 사고가 있었다. 당시 13개 학교에서 1500여 명이 식중독에 걸렸다. 원인균이 노로바이러스란 사실은 밝혀졌다. 그러나 정확한 감염 경로와 원인이 드러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급식업체가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급식사업을 재개했다. 급식 계약이 취소된 N캐터링의 경우 서울시 등을 상대로 계약해지 무효확인소송을 제기, 승소했다.

식중독 사고는 정확한 원인 규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2003년부터 올 5월까지 질병관리본부의 식중독 역학조사 134건 중 47.8%(64건)는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급식업체가 처벌받는 사례는 드물다. 열린우리당 학교급식사고 진상조사대책위원회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위탁급식업소 폐쇄로 이어진 경우는 5건, 사법 당국에 고발된 건수는 17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CJ푸드시스템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이번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철근.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