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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간 잡음에 171억원 유령청사…직원들은 '특공' 시세차익

중앙일보

입력

정부부처 간 엇박자로 인해 혈세 171억원이 낭비됐다.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이 세종시 이전 대상이 아닌데도 관련 고시를 “몰랐다”며 신청사 설립을 강행한 데 따른 결과였다.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제동으로 관평원의 세종시 이전은 무산됐고, 171억원이 투입된 새 건물은 유령청사가 됐다. 하지만 관평원 직원 중 절반 넘는 인원은 세종시 이전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특별공급’으로 이미 새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상태였다.

세종시 반곡동에 위치한 관세평가분류원 신청사가 1년 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빈 건물로 방치돼 있다. 사진 문화일보

세종시 반곡동에 위치한 관세평가분류원 신청사가 1년 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빈 건물로 방치돼 있다. 사진 문화일보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관세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2005년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계획 고시’를 통해 관세청 및 그 4개 산하기관을 ‘이전 제외기관’으로 명시했다.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의 세종시 이전은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한 것으로, 대전에 위치한 관세청 및 산하기관은 해당 사항이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관세청은 “업무량 확대에 따른 근무 인원 급증”을 이유로 2015년 세종시 반곡동에 관평원의 신청사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행안부의 ‘이전 제외’ 고시에 대해선 “몰랐다”고 했다. 이후 2018년 2월 이전제외 고시를 뒤늦게 인지한 관세청은 관평원을 세종시 이전 대상에 포함해 달라며 행안부에 고시 변경을 요청했지만, 행안부는 거부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19년 6월 관평원 청사 공사 강행을 인지한 행안부가 재차 관세청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관세청은 신청사 공정률이 50% 가까이 된다며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 관세청은 청와대와 여당을 통한 이른바 ‘구명 로비’도 벌였는데, 권 의원실이 입수한 당시 행안부 내부 문건엔 “관세청은 관평원의 세종시 이전을 위해 BH(청와대)ㆍ국회 등 다방면으로 지원을 요청했다”고 적시돼 있다.

또 관세청은 3곳의 법률사무소에 의뢰해 “관평원의 세종시 이전은 행복도시법 위반 사항이 아니다”는 법률 자문도 받았다. 공공기관의 세종시 이전 규정을 담은 ‘행복도시법’이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대전 등 지방 소재 공공기관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은 입법 미비를 관세청이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지난 14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 단지. 관세청 산하기관인 관세평가분류원 직원이 '세종시 특별공급'을 통해 분양받아 입주할 예정으로 입주 전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 문화일보

지난 14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 단지. 관세청 산하기관인 관세평가분류원 직원이 '세종시 특별공급'을 통해 분양받아 입주할 예정으로 입주 전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 문화일보

행안부는 2019년 7월 관평원의 이전 추진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감사까지 청구(지난해 2월 기각)하며 재차 막아섰지만 관세청은 공사를 강행했다. 결국 지난해 5월 관평원의 세종시 신청사는 완공됐다. 하지만 대전시와 행안부ㆍ기획재정부 등의 협의에 따라 관평원의 세종시 이전은 최종 무산됐다. 171억원이 투입된 신청사는 현재 1년 가까이 공실 상태다.

관평원 이전을 둘러싼 정부부처 간 잡음이 빚어지는 사이 관평원 직원들은 세종시 이전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아파트 특별공급을 통해 대거 청약에 당첨되기도 했다. 82명 직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49명이 당첨됐는데, 당시 분양가는 2억~4억 원대였다. 현재 이들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7억~14억 원대로 형성돼 있어 이들이 아파트 매매에 나설 경우 상당한 액수의 시세차익이 예상된다.

권영세 의원은 “관세청이 어디를 믿고 이처럼 대담한 일을 벌였는지 해명해야 한다”며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문제점을 발본색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권 의원은 “관평원이 특공 아파트를 받기 위해 신청사를 지으려고 한 것 아니냐”며 “세종시 청사 문제뿐 아니라 특공으로 받은 아파트에 대한 조치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17일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 신청사에 붙은 '출입통제' 안내문. 뉴스1

17일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 신청사에 붙은 '출입통제' 안내문. 뉴스1

이에 관세청 관계자는 “청사 이전 예산은 기획재정부와 논의했고 관련 인ㆍ허가 절차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협의해 결정한 사안”이라며 “결과적으로 행안부와 법 해석 차이로 이전이 무산됐지만, 처음부터 우리가 법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특별공급 분양에 대해선 “특공 분양을 받은 당시에는 관평원이 이전기관이었기 때문에 직원들도 적법절차를 거쳐 받았다”며 “하지만 이전이 무산된 지금 특공 분양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우리가 답변할 사항은 아니다”고 했다.

김기정ㆍ김남준 기자 kim.kijen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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